[한자 이야기]<73>卒·醉·碎·粹·悴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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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卒(졸)’의 甲骨文(갑골문)은 두 개의 ‘x’형의 무늬가 상하로 연결된 무늬, 혹은 하나의 ‘x’ 형의 무늬가 있는 옷을 입은 사람을 나타낸다. 이 무늬는 본래의 바탕을 자잘하게 부수어 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卒’의 의미에는 ‘부수어지다’라는 의미소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卒’에는 ‘집단, 무리, 하인, 심부름꾼, 군사, 마치다, 죽다, 마침내, 드디어, 갑자기, 돌연히, 버금, 버금가다’라는 의미가 있다. ‘부수어진 것’은 ‘자잘하고 많은 수’를 나타내게 되므로 이로부터 ‘집단, 무리’라는 의미가 나왔을 것이다. 이러한 집단은 대개 하층 사람들이었으므로 이로부터 ‘하인, 심부름꾼’이라는 의미가 나오고, ‘집단’이 강조되면서 ‘군인’이라는 의미도 나왔을 것이다. ‘부수어진 것’은 또한 ‘종말’을 의미하므로 이로부터 ‘마치다, 죽다’라는 의미가 나왔을 것이며, ‘마치다, 죽다’라는 동사로부터 ‘갑자기, 마침내’라는 부사적 의미가 나왔을 것이다. ‘酉(술 유)’와 ‘卒’이 합쳐진 ‘醉(취)’는 ‘취하다’라는 뜻인데, 이는 ‘술로 부수어진 것’을 나타낸다. ‘石(돌 석)’과 ‘卒’이 합쳐진 ‘碎(쇄)’는 ‘잘게 부수다, 부서지다’라는 뜻인데, 이는 ‘돌이 잘게 부수어진 것’을 나타낸다. ‘碎’에는 ‘잘다, 번거롭다’라는 뜻도 있는데, 이는 잘게 부수어진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米(쌀 미)와 ‘卒’이 합쳐진 ‘粹(수)’는 ‘순수하다, 아름답다’라는 뜻인데, 이는 벼에서 껍질을 제거하고 나온 ‘쌀’을 나타낸다. 하나의 볏짚에서 쏟아져 나온 쌀알이 아마도 ‘부수어져 내린 쌀’로 인식된 모양이다. 이러한 쌀은 과거의 농경사회에서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粹’에는 이 외에도 ‘부서지다, 부스러기 쌀’과 같은 의미가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최초의 의미였을 것이다. ‘심(마음 심)’과 ‘卒’이 합쳐진 ‘悴(췌)’는 ‘근심하다, 파리하다, 시들다, 생기를 잃다’라는 뜻인데, 이는 모두 ‘부수어진 마음’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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