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데뷔 10주년 공연 ‘소리꾼’ 김용우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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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소리꾼’으로 불리는 김용우 씨. 전통민요에 기반을 둔 그의 소리는 아카펠라, 재즈, 뉴에이지와 만나면서 변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맛깔나는 김용우 표 소리가 되었다. 신원건 기자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소리꾼’으로 불리는 김용우 씨. 전통민요에 기반을 둔 그의 소리는 아카펠라, 재즈, 뉴에이지와 만나면서 변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맛깔나는 김용우 표 소리가 되었다. 신원건 기자
“아, 옷요? 동남아에 여행 갔다 온 팬이 무대의상 하라고 사다 준 거예요. 국악계에는 스승과 제자는 있어도 팬클럽은 쉽지 않은데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소리꾼이에요.”

풀빛 청음(淸音)이 느껴지는 미성의 소리꾼 김용우(40) 씨.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하늘하늘 속이 비치는 태국풍의 옷을 입고 있었다. 전통 민요를 재즈나 아카펠라, 뉴에이지 스타일로 부르는 파격을 시도하고, 차림새나 헤어스타일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에게 무척 어울리는 옷이었다. 3700여 명의 팬클럽 회원에, 공연장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그는 전통음악계에선 보기 드문 ‘스타 소리꾼’이다.

○ 민요 채집하다 소리꾼으로

1996년 1집 앨범 ‘지게소리’를 내놓은 그는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김 씨에겐 여전히 ‘젊은 소리꾼’이란 호칭이 따라다닌다. 고루한 원숙미를 미덕으로 삼는 전통소리 분야에서 그의 시도는 워낙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국악고와 서울대에서 피리를 전공한 그가 민요에 눈을 뜬 것은 1987년. 충남 예산군에서 농촌활동을 하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부르는 농요의 질박한 맛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는 이후 카세트 하나를 들고 전국을 떠돌며 8년간 민요 채집에 나섰다.

“소리 공부하러 온 청년을 동구 밖까지 마중 나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막내 손자 노릇하면서 며칠씩 소리를 배웠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르신들이 항상 고봉으로 떠 주시던 밥을 먹는 일이었어요. 밤새도록 어르신들과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지낸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전통민요와 월드뮤직 사이

김 씨는 민요 외에도 김용배 선생에게 사물놀이, 이양교 선생에게 정가(가곡, 가사, 시조), 조공례 명창에게 진도 들노래, 박병천 선생에게 진도 무악, 오복녀 선생에게 서도소리, 이춘희 명창에게 경기 12잡가를 사사하는 등 치열하게 전통소리를 배웠다. 파격이 넘치는 공연무대에서도 민요의 가사나 선율만큼은 원형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

“제 첫 앨범에 실린 ‘지게소리’는 충남 태안군의 고성규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노래였어요. 이 곡의 반음 표현을 나름대로 해석해 불렀는데, 나중에 할아버지가 ‘아, 이놈아 내 노래를 왜 이렇게 망쳐 놓았어’ 하면서 혼을 내셨지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30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원에서 열리는 그의 10주년 기념공연 ‘십년지기’에는 아카펠라 그룹 ‘더 솔리스트’, 풍물굿패 ‘몰개’, 이꽃별(해금) 등과 함께 무대를 꾸민다. 1집 ‘지게소리’부터 지난해 발매한 5집 ‘어이 얼어자리’까지 히트곡과 피아노로 반주한 제주민요 ‘너영 나영’, 레게 리듬이 가미된 ‘신아외기소리’ 등 신곡을 부를 예정이다.

“퓨전 국악을 한다고 국적 불명의 음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월드뮤직’이란 영어로 노래하거나, 서양 음계적 화성을 따른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음악에 튼튼히 뿌리박은 상태에서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것이죠.”

2만∼4만 원. 1588-789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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