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 입력 2006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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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이사야 벌린 지음·박동천 옮김/668쪽·2만8000원·아카넷

영국의 지성사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의 진면목은 같은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1892∼1982)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카는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러시아혁명을 높이 산 진보적 역사학자였다. 반면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러시아혁명을 목격한 벌린은 옥스퍼드 출신으로 혁명에 기반한 전체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전통적 자유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카를 마르크스의 평전을 냈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학계에서는 사회주의에 경도된 카의 평전보다는 자유주의자였던 벌린의 평전을 더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카의 영향이 압도적이지만 2000년대 들어 벌린의 저서가 잇따라 번역되면서 그의 만만치 않은 내공에 감탄하는 이가 늘고 있다.

이 책은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이라는 제목으로 1968년 출간된 것을 그의 사후인 2002년 대폭 보완해 새롭게 출간한 것이다. 벌린은 이 책에서 20세기 초반 사회주의의 거센 광풍 아래 부르주아 사상이라고 비판 받은 자유주의가 얼마나 심오하고 진취적 사상인가를 펼쳐 보인다.

네 편의 논문 중 ‘역사적 불가피성’은 인류의 역사가 필연적이라는 결정론적 사고와 역사 속에서 개인의 선택을 도덕적으로 찬양·비난하는 윤리적 행위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역사에서 개인의 선택을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 격하시킨 카의 역사관을 교조적 유물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벌린이 역사의 필연성을 부인하거나 영웅사관을 옹호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자유주의는 이런 모순을 깊숙이 파고드는 회의주의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두 개념’은 일체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적극적 자유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자유주의의 진취성은 진리는 하나라는 교조주의와 그 진리를 전유(專有)하려는 전체주의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확인된다. 벌린의 이런 관점으로 인해 이 책은 다원주의의 고전으로도 꼽힌다. 이 개정판에는 ‘자유에 관한 다섯 번째 논문’이 될 뻔했다가 시한에 쫓겨 빠진 ‘희망과 공포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그가 12세 때 소설 형식으로 러시아혁명의 모순을 다룬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와 ‘냉전의 설계자’라 불린 미국 외교정책의 브레인 조지 케넌에게 보낸 서한 등이 수록돼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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