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조각, 대중과 함께 숨쉬고 싶다

  • 입력 2006년 5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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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조각프로젝트에 선보인 박봉기 안시형 문병탁의 ‘동시상영’. 나루공원 인근의 상징적 건축물 세 개를 콘크리트 구조물로 재현해 실재와 재현 사이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다.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
부산조각프로젝트에 선보인 박봉기 안시형 문병탁의 ‘동시상영’. 나루공원 인근의 상징적 건축물 세 개를 콘크리트 구조물로 재현해 실재와 재현 사이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다.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
○ 다양한 전시… 무료관람… 400점 한자리에

조각이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27일 부산비엔날레의 특별전으로 APEC 나루공원에서 막을 올린 ‘부산조각프로젝트’와 6월 7∼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400점의 조각을 선보이는 ‘EHS프로젝트’가 대중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사례들이다. 하나는 야외의 열린 공간에서 대작들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실내에서 감상하기 좋은 소품들을 모은 전시다. 최근에는 경기 양주시 장흥에 조각공원이 포함된 장흥아트파크가 새로 문을 열었다. 입장료를 받던 서울올림픽공원 내 조각공원은 무료 관람으로 바뀌는 등 조각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조각은 다른 장르에 비해 불리한 점이 많다. 거리의 동상이나 건물 앞에 세워진 환경조형물을 제외하면, 예술작품으로서의 조각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는 많지 않다. 우선 나무와 돌, 강철 같은 단단한 재료를 깎고 두들겨 작품을 만드는 과정부터 혹독한 육체노동이 요구된다. 작품 제작은 물론 전시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아 전시 기회를 잡기도 힘들다. ‘조각의 위기’가 거론될 정도다.

○100만∼300만 원대 작품 경매이벤트도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조각가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따로 모임을 가졌던 서울대 홍익대 이화여대 출신의 조각가들이 한데 뭉쳐 ‘EHS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조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EHS란 각 대학의 이름과 이번 전시의 주제인 감성, 인간성, 서울(Emotion, Humanity, Seoul)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400점의 조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죠. 이 전시를 계기로 조각 붐이 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이화조각회 심부섭 회장)

“어떤 조각가들이 있는지, 조각 작품은 어떻게 구입하는지도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마련된 전시입니다.”(홍익조각회 연제동 회장)

관심을 높이기 위해 독특한 경매제도가 도입됐고, 수익금 일부는 불우한 동료를 돕는 데 쓰기로 했다. 만약 입찰자가 200만 원을 써냈는데 다른 사람이 150만 원을 써냈다면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보다 10만 원을 더 내면, 즉 160만 원이면 작품을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작품 가격은 100만∼300만 원대. 참여를 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한해 현장에서 서면응찰이 이뤄진다. 더불어 문경리 박창식 씨 등 6명은 6월 7일∼9월 7일 청계천 마장2교 생태학습장 주변에서 ‘청계천이 흐르는 감성 공간’이란 공공미술전도 연다.

○‘보고 만지고 듣는’ 부산조각프로젝트 만나세요

부산조각프로젝트는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작품과 만나는 기회다. ‘대지에의 경의’라는 주제 아래 만들어진 조각 작품을 보고 만지거나 일부는 사용할 수도 있다. 전시감독 이태호 씨는 “열린 공간의 조각 작품들은 예술과 생활이 함께 호흡하는 기회를 만들어, 사람과 예술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공감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근 건물을 그대로 콘크리트로 재현해 설치한 ‘동시상영’(박봉기, 안시형, 문병탁) 등 국내 작품 7점, 푸른 잔디 위에 누운 만삭의 여인을 화강암으로 표현한 ‘달의 여신’(필리핀의 아그네스 아렐라노) 등 해외 작품 13점이 수영강변에 자리한 공원 산책길을 따라 설치돼 있다.

독일 철학자 헤겔에 따르면 조각은 물질적 성질을 초월하여 그 속에 인간의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다. 조각가 신현중 서울대 교수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서 영적 체험에 가까운 감동을 받는 것이 바로 조각이다”며 “작품에서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것이 다른 장르에 비해 양적으로 비교가 안 된다”고 자랑했다.

작가의 아름다운 노동과 영혼이 담긴 조각에서 펄떡이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은 다 까닭이 있는 셈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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