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석의 도시와 건축]베를린 의사당과 여의도 의사당

  • 입력 2006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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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모임의 공간이다. 그 모임의 중심에는 건축이 있고, 그것이 도시를 명소로 만든다. 파리 퐁피두 센터나 도쿄 롯폰기 힐스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한국에서도 최근 청계천이 ‘모임의 건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에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요소가 부족한 게 적지 않다. 건축가 양진석 씨가 국내외 건축에 깃든 모임의 정신을 비교한다.》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응집력에 큰 차이가 있다. 여의도 의사당은 폐쇄적인 형태를 띤 반면 베를린 의사당은 방문객들의 축제의 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 건물에는 거대한 돔이 있고, 도시의 랜드마크 요소가 있으나 도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른 셈이다.

베를린 의사당(제국 의회 건물·일명 라이히슈타크)은 1894년 파울 발로트의 설계로 완공된 뒤 100여 년간 파괴와 재손질의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사라졌던 돔을 노만 포스터 씨가 되살렸다. 포스터 씨는 1992년 이 건물을 의사당으로 개축하기 위한 설계 공모전에서 54개국 800여 명의 건축가와 경쟁을 벌인 끝에 당선됐다.

이 건물은 연면적이 1만8406평이고, 돔의 높이도 47m다. 포스터는 외벽은 남겨두고 내부를 개축하면서 19세기 건립 당시 있었던 돔을 되살려 개폐가 가능한 구조로 바꾸었다. 이 덕분에 실내로 들어온 햇빛은 중앙의 원추를 통해 사방으로 반사돼 의사당 곳곳을 비춘다. 돔의 꼭대기에는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방문객들은 의원들의 머리 위를 오간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런 장치를 통해 포스터는 국민의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전면 유리는 의정 활동의 투명성을 드러내 주는 장치다. 포스터 씨는 이 작품으로 1999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1975년 완성된 여의도 의사당은 2만4636평으로 베를린 의사당보다 조금 크다. 이 건물은 현대 양식에 한국의 전통미를 가미했다. 의사당을 둘러싼 24개의 기둥은 다양한 의견을 뜻하며, 돔 지붕은 각각 다른 의견들이 토론을 거쳐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의회 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

1968년에 설계 공모에 쟁쟁한 건축가들이 경합하였으나, 정치 논리에 휘말려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여러 건축가들의 중지를 모아 만들었다. 이처럼 여러 의견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개성이 무시되면서 열주와 돔 등으로 관 건축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 두 의사당은 어떤 점이 다를까?

먼저 돔을 보자. 베를린 의사당은 도시를 감상할 수 있는 돔으로 향하는 나선형 경사로와 전망대가 포인트다. 이곳을 통하면 의사당이 개방적인 이미지를 주며, 사람들은 그 공간을 즐긴다.

여의도 의사당은 외부에서밖에 볼 수 없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폐쇄성의 이미지를 준다. 베를린 의사당에 비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데 인색한 것이다. 여의도 의사당의 돔은 권위의 상징으로, 베를린 의사당의 돔은 참여의 상징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의도 의사당은 거대한 열주와 중앙의 돔은 한국 건축의 전통과 현대의 절충으로 이뤄져 있으나 상대적으로 작은 창들은 개방과 거리가 있는 듯하다. 베를린 의사당은 명쾌한 현대 건축의 문법을 보여 주며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공원과 같다. 뛰어난 건축 작품이 바로 명소가 된다는 유럽식 현대 건축의 등식을 보여 주고 있다.

주말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은 도시 투명성의 지표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 의사당은 독일인들의 일상을 멋지게 해 준다. 여의도 의사당은 과연 어떤가?

▼필자 약력▼

△일본 교토대 건축학 박사 △서울대 경영대 AMP과정 수료 △한양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Y GROUP(건축 인테리어) 대표 △저서: 건축가 양진석의 이야기가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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