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석의 도시와 건축]퐁피두센터와 도심부활 프로젝트

  • 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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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
퐁피두 센터
도시가 모임의 공간이 되려면 도시의 맥락과 건축 콘텐츠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그 모범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 이 센터는 30여 년 전 국제 공모에 응모한 861개 작품 중에서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의 공동작으로 탄생했다. 1977년 두 거장의 합작으로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시민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것을 예상하고도 이런 작품을 파리 한복판에 세운 당국의 문화적 혜안은 되새길 만하다.

퐁피두 센터는 안과 밖이 뒤바뀐 듯한 형상으로 내부에 있어야 할 에스컬레이터, 수도관, 가스관이 모두 밖으로 튀어나와 흉물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내부 공간을 확장시켜 주는 이상적인 공간을 제공했다.

이 건물은 파리의 역사적 면모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위라도 하듯 기계적인 소재와 형태의 파괴로 컨셉트를 표현했다. 이 센터는 런던의 로이드뱅크, 홍콩 상하이뱅크와 함께 기계 미학을 담은 하이테크 건축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특히 이 건물은 단순한 건축술에서 벗어나 진보 예술 이론과 접목돼 현대 건축의 대안으로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퐁피두 센터는 진보와 기술의 상징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건물인 것이다.

현대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조르주 퐁피두 당시 대통령은 예술 중심지인 파리를 대표함과 동시에 서로 분리된 조형예술 독서 디자인 음악을 연계시킬 수 있는 복합건물을 원했다. 이 센터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의 의지에 따라 퐁피두 센터 안에는 파리 국립근대미술관을 비롯해 영상전시공간, 공공정보 도서관, 공업창작센터, 음악음향연구소 등이 들어섰다. 덕분에 퐁피두센터는 365일 축제의 장이 됐고 현대 문화의 요충지가 됐다.

퐁피두 센터가 있는 레알 지역의 보부르는 파리의 문화 중심지로서 좋은 입지가 아니었다. 보부르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빈민촌을 겨냥해 비아냥거리는 이름이다. 그만큼 그 지역은 보잘것없었고 술집이 밀집해 있었다. 당국은 이를 재개발하는 차원에서 공격적인 문화 정책을 펼쳐 퐁피두 센터를 세웠고, 그 결과 도시의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이런 점에서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를 다시 보자. 서울의 낙후된 강북 지역이나 유흥가에 개발 위주의 정책만 펼친다면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퐁피두 센터처럼 강력한 문화정책에 바탕을 둔 키 테넌트(Key Tenant) 도입을 통해 도심의 부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어떤 곳을 보더라도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퐁피두 센터의 사례를 눈여겨본다면 서울은 역사 문화 건축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도시로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낙후된 지역에 문화 콘텐츠를 가진 건축물을 세워 세계적인 모임의 공간으로 만든 파리인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양진석 건축가·Y GROUP 대표 ygroupy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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