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통신]체온 유지위해 머리 안감아… “그래도 오른다”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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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횡단원정대의 식사. 추운 날씨 덕분에 김치나 고등어를 먹을 수 있으나 고도가 높아 압력 밥솥으로 밥을 짓는다. 에베레스트=전 창 기자
에베레스트 횡단원정대의 식사. 추운 날씨 덕분에 김치나 고등어를 먹을 수 있으나 고도가 높아 압력 밥솥으로 밥을 짓는다. 에베레스트=전 창 기자
베이스캠프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베이스캠프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은 남미 페루의 라린코나다로 해발 5099m다. 미국 지리학회(내셔널지오그래픽)가 ‘문명이 멈추는 곳’이라고 표현한 이 곳보다 높은 곳에선 고산병으로 숨지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두통과 탈수 증세로 사람이 살기 어렵다.

에베레스트 티베트 베이스캠프의 해발 5140m. 라린코나다보다 높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원들이 2주 이상 보낸 전진베이스캠프의 고도는 6400m이고 정상공격조가 1주일 넘게 머문 캠프들의 고도는 7100∼8300m에 이른다.

박영석 에베레스트 횡단원정대 본대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때는 4월 10일. 성공적인 등반을 마치고 다시 해발 3000m 이하의 ‘인간이 살 만한 고도’로 철수한 때가 5월 16일로 꼬박 37일간 ‘문명이 멈추는 곳’에서 생활한 셈이다.

평소 해발 100∼200m에서 생활해 온 대원들의 고생은 불 보듯 뻔했다. 한 대원은 폐부종 증세로 베이스캠프 입성 하루 만에 하산해 귀국길에 올랐고 정상 공격을 노리던 허영만 화백도 고소 증세로 보름 만에 짐을 꾸려야 했다. 17명의 대원 중 나머지 15명도 평소에 없던 천식 증세 등으로 고생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대원들은 무엇을 먹고 입고 어떻게 살았을까? 히말라야 8000m급 고산 등반만 32번째인 박영석 대장과 8000m급 7곳의 정상에 오른 오희준 부대장의 생존 노하우 덕택에 텐트 생활의 낭만도 있긴 했다.

○ 설익은 밥과 떡밥같은 라면

17명의 대원이 두 달여 동안 먹을 식량은 3.5t. 이 중 쌀은 170kg. 식량은 다양했다. 부식의 대부분은 장기 보관이 가능한 깡통 제품. 하지만 옥돔 갈치 고등어도 히말라야 고산까지 동원됐다. 베이스캠프 사방이 얼음이라는 자연 냉장고 덕택에 생선은 원정 기간 내내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직접 담가 온 김치도 자연 냉장고의 한구석을 굳게 지켰다.

하지만 문제는 낮은 기압. 섭씨 100도가 되어야 물이 끓지만, 에베레스트에서는 70도가 한계였다. 그래서 압력밥솥이 동원됐다. 히말라야까지 압력밥솥을 들고 가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그래야 제대로 조리가 되고 연료도 절약할 수 있다. 점심은 늘 라면과 국수. 라면도 압력밥솥에 끓이지 않으면 면발이 떡밥처럼 뭉치는 까닭에 히말라야 원정 경험이 풍부한 대원들이 조리를 맡았다.

이런 식탁도 ‘낮은 고도’에서나 가능했다. 해발 7100m의 노스콜캠프부터는 인스턴트 수프와 보디빌더들이 마시는 영양음료가 주식을 대신했다. 과연 식욕은? 성인 밥공기의 절반 이상을 먹는 대원을 본 적이 없다. 생존을 위해 먹었을 뿐이다.

○ 세수? 오 노(Oh No!) 두 달 동안 팬츠는 딱 3장.

높은 지대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뇌에 체액이 차는 뇌부종에 걸리는 것.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의식불명에 빠져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 예방법은 털모자를 써 머리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산에선 머리를 감지 못한다. 자칫 체온을 잃어 뇌부종에 걸릴까 봐 두려워서다. 두 달 가까이 머리를 감지 않으니 남녀 대원들의 모습은 거의 괴물 수준이다.

세수? 말리는 사람은 없으나 자연스럽게 생략하는 분위기. 특히 전진베이스캠프부터는 눈을 녹여 식수를 마련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힘들게 지고 온 연료로 물을 데워 얼굴을 닦으면 왕따 되기 쉽다. 원정 기간에 딱 한번,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앞두고 머리 감는 것이 허용됐을 뿐이다. 칫솔질도 매일 하기 어려웠으나 캔디형 구강청정제를 챙겨 와 기본적인 위생은 지킬 수 있었다.

위생 상태에 대해 나왔으니 충격적인 상황 하나만 더 말하겠다. 대원들에게 지급된 팬티는 남녀 3장뿐. 내복도 딱 2장씩 지급됐다. 여성 대원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위생패드 등을 충분히 가져 왔으나 준비성 없는 남성 대원들의 경우는 상상에 맡기겠다. 더 황당한 것은 원정이 끝날 때까지 입지 않은 새 팬티와 내의가 남은 대원들도 있다는 사실. 워낙 추워서 땀 흘릴 일이 없고 공기도 좋아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복 오염이 적다는 것을 감안하시길.

○ 사방이 화장실

티베트 쪽 에베레스트 캠프에 입성하기 위해 내는 허가비는 1인당 4000달러(약 400만 원)나 된다. 많은 비용을 받는 이유는 환경 보호를 위해서라고 한다. 베이스캠프에 중국등산협회(CMA)와 티베트등산협회(TMA)가 고용한 환경미화요원들이 이따금 쓰레기를 치운다. 화장실도 축구장 10개 크기만 한 넓은 베이스캠프 터에 3개나 있다. 하지만 중국 시골의 전형적인 화장실이다. 무슨 말이냐면 칸막이가 없어 옆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볼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캄캄한 틈을 타서 이곳저곳에서 볼일을 본다.

규모가 훨씬 작은 전진베이스캠프에는 이것이 통하지 않고 간이 화장실을 원정대별로 눈을 파 만들었다. 내용물도 포터를 시켜 산 아래로 내려 보내야만 한다. 나름의 질서가 있는 셈이다.

에베레스트=전 창 기자 jeon@donga.com

―끝―

▼셰르파는 고소득 직업… 네팔 평균소득의 5배▼

히말라야 등반에서 셰르파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셰르파는 네팔 쪽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종족의 이름이자 이들의 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족이나 성을 표현할 때는 ‘Sherpa’로 첫글자를 대문자로, 등반 도우미나 포터를 뜻할 때는 소문자로 쓴다.

그뿐만 아니다. 이들은 아들의 이름을 태어난 요일에 따라 짓는 풍습이 있다. 다와(월), 밍마(화), 락파(수), 푸르바(목), 파상(금), 펨바(토) 니마(일). 이쯤 되면 이름만 가지고는 누가 누군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네팔 1인당 국민소득이 1400달러(2003년 기준)인 반면 셰르파들은 평균 5배 이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평소에 가리는 것이 많아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원정에서 박영석 대장과 함께 에베레스트 횡단에 성공한 세랍 장부 셰르파(37)는 히말라야 8000m급 고산 8개에 오른 산악 스타. 평소 마음씨가 좋아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가 베이스캠프 식당 텐트에서 난리를 부린 적이 있다.

대원들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마른 오징어를 구워 먹는 현장을 본 것. 셰르파들은 생선이든 고기든 직접 불에 구우면 기상이 악화돼 사고가 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침 셰르파들이 7100m 캠프를 구축하기 위해 올라가 있었다. 이런 징크스를 모르던 대원들에겐 날벼락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라마제단 앞을 지날 때는 꼭 쌀을 세 번 나눠서 뿌리고 왼쪽으로 돌아간다. 이는 부처님을 뜻하는 만(卍)자가 항상 왼쪽으로 뚫려 있다(?)고 해서 그렇단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불경스러운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문화가 달라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다. 이들은 긍정의 의사표현을 우리와는 다르게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존경의 표시는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혀를 꼿꼿이 세워 쭉 내민다. 한국에선 뺨 맞을 짓이다.

에베레스트=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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