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02년 나폴레옹 ‘레지옹 도뇌르’ 제정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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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걸 딸랑거리는 어린애 장난감이라 부른다. 사내들이란 이런 장난감에 이끌리는 법이다.”

1802년 5월 19일 당시 프랑스 제1집정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레지옹 도뇌르(La L´egion d'Honneur)’를 제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레지옹 도뇌르는 ‘영광의 군단’을 뜻하는 명예 기사단으로, 기사들의 서열을 부여한 서훈(敍勳) 제도다.

훈장이란 받는 사람에겐 더없는 자랑이겠지만 주는 권력자에겐 어린애를 달래고 유혹하는 한낱 장난감일 뿐이다.

나폴레옹만큼이나 이런 훈장의 심리를 잘 이용한 이도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레지옹 도뇌르를 만든 것도 1799년 총재정부 타도 쿠데타에서 공을 세운 충복들에게 뭔가 보상을 해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메달과 영관(榮冠) 문장(紋章)을 재정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나폴레옹도 일찍이 ‘영광의 문장(Les Armes d'Honneur)’을 만들어 무공자의 사브르(기병도)나 소총, 나팔, 도끼에 이 문장을 새겨 주고 추가 봉급을 주기도 했다.

당초 레지옹 도뇌르는 그랑도피시에(Grand Officier·대장군) 코망되르(Commandeur·사령관) 오피시에(Officier·장교) 슈발리에(Chevalier·기사) 등 4개 등급이었다. 하지만 2년 뒤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은 그랑크루아(Grand Croix·대십자)라는 최고 등급을 새로 추가했다.

나폴레옹은 즉위 직후 군대의 원수와 병사들은 물론 의회 법원 교회 등 국가기구 신하들에게서 충성서약을 받은 뒤 일제히 그랑크루아를 수여했다.

이미 ‘영광의 문장’을 받은 병사 2000여 명의 훈격(勳格)을 모두 레지옹 도뇌르 급으로 높여 주기도 했다.

나폴레옹 재임 중 레지옹 도뇌르는 대부분의 군인에게 돌아갔지만 학자나 화가 음악가 작가에게도 수여됐다. 외국인 중엔 독일의 문호 괴테도 끼어 있었다. 왕정복고기에도 레지옹 도뇌르는 살아남았고, 루이 필립 왕 때에 이르러 유일한 훈장이 됐다.

레지옹 도뇌르는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등급별로 최대 숫자(쿼터)가 정해져 있다. 다만 외국인은 쿼터에 포함되지 않으며 제1,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에 대한 집단적 서훈은 별도로 관리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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