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WHO 천연두 완전퇴치 선언

  • 입력 2006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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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이상 거의 모든 사람의 어깨에는 도톰한 주사 자국이 있다. 천연두 예방접종의 흔적이다.

천연두는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가장 두려워한 전염병 중 하나였다. 치사율이 30%에 이르는 데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해도 곰보 자국을 얼굴에 남기기 때문이다.

천연두의 공식 병명은 ‘두창(痘瘡)’이다. 민간에서는 ‘마마’ 또는 ‘손님’으로 불렸다. 질병에 마마라는 최상급 존칭을 붙인 것은 병을 옮기는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다.

‘몹시 애를 먹다’라는 뜻의 단어로도 쓰이는 홍역은 ‘작은 손님’, 천연두는 ‘큰 손님’으로 불렸다. 조상들이 천연두를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약 3100년 전의 이집트 왕인 람세스 5세의 미라 얼굴에 곰보 자국이 남아 있다. 16세기 초 남아메리카 아스테카 문명이 스페인 군대에 맥없이 무너진 것도 천연두 때문이었다.

스페인 군대와 함께 묻어온 천연두 균이 그때까지 천연두를 경험하지 못했던 남미 원주민에게 급속히 퍼져 인구가 빠르게 감소한 것.

인류가 천연두에 제대로 맞선 것은 불과 200여 년 전부터다. 소의 피부병에 감염된 목동(牧童)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영국인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1798년 소의 고름(우두·牛痘)을 사람에게 접종해 예방에 성공한 것. 예방약을 뜻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말도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했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을 수행해 일본에 갔던 지석영(池錫永)이 치료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1951년 4만3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1만1000여 명이 숨졌을 정도로 기승을 부리다 1960년 3명의 환자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세계적으로는 1977년 아프리카에서 소수의 환자가 발견된 게 마지막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5월 8일 천연두 완전 퇴치를 선언했다.

그렇다고 인류가 천연두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됐다고 단언하긴 이르다. 엉뚱하게도 천연두는 테러의 그림자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테러집단이 천연두 균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천연두를 생물테러 병원체로 분류해 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 등은 WHO의 폐기 권고에도 불구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직 실험실에 천연두 균을 보유하고 있다.

과학이 성취해 놓은 인류의 행복을 인간의 정치와 욕심이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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