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2년 美핵실험 TV생중계

  • 입력 2006년 4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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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흥분돼 있었다.

말로만 듣던 핵폭발 실험을 구경하게 되다니….

1952년 4월 22일 미국 네바다 주 사막. 세계 각국에서 온 200여 명의 기자와 카메라맨은 들뜬 기분으로 언덕 위에 모여들었다.

핵실험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언론 공개와 TV 생중계는 처음이었다. 취재진이 모인 곳은 핵실험 장소에서 불과 10마일(약 16km) 떨어진 거리. 핵실험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잠시 후 ‘장관’이 펼쳐졌다. 미국 워싱턴 블루틴지(紙)에서 일하는 한 기자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까만 고글(보안경)을 쓰고 신호를 기다렸다. 이제…폭탄이 떨어졌다. 환상적인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거대한 우산을 만들었다. 핵폭발의 충격파가 몸에 전달돼 왔다. 처음엔 뜨거운 열기, 다음엔 쇼크….”

언론에서는 이때 터진 31kt(킬로톤·1kt은 TNT 1000t이 터질 때의 위력)짜리 핵폭탄을 ‘빅 샷’이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게 각각 13kt과 20kt짜리니 훨씬 강력한 폭탄이었다.

TV를 통해 폭발 장면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실험 장소에서 불과 65마일(약 10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라스베이거스 시민들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TV로 생중계된 이후 미국에서는 핵실험에 대한 공포보다는 오히려 ‘원자 붐’이 일어났다.

‘원자 칵테일’ ‘원자 캔디’ ‘원자 장난감’…. 다양한 상품이 개발됐다. ‘원자의 도시’로 불린 라스베이거스는 관광객들을 위해 핵실험 날짜와 전망이 좋은 장소까지 제공했다.

12년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235차례의 지상 핵실험이 실시됐다. 3주에 1번꼴이다. 1963년 이후에는 지하에서만 핵실험이 이뤄졌다.

2002년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미공개 연방정부 자료를 이용해 “냉전 때 미국이 실시한 핵실험에 따른 낙진으로 적어도 1만5000명이 암에 걸려 사망했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자세한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냉전의 반대쪽이었던 소련에서도 핵실험으로 인한 피해가 컸을 것이다. 1950년대 네바다 사막에서 핵실험을 지켜본 많은 미국인은 자신들이 ‘냉전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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