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간과 말의 우정… 가족영화 ‘드리머’ 13일 개봉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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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리머(dreamer)’는 ‘가족 영화’하면 그렇고 그럴 것이라는 식상함을 깨고 요즘 보기 드문 감동을 준다. 동물과 사람과의 교감, 부상한 경주마를 극진하게 돌보는 일로 가족 간에 화해를 이룬다는 줄거리는 정말 뻔해 보이지만, 완급을 조절하는 감독의 연출력과 디테일이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새로운 버전으로 거듭났다.

한때 혈통 좋은 종마들을 번식시키는 목장으로 유명했던 크레인 목장에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아버지 ‘벤’과 할아버지 ‘팝’의 소원한 부자지간 때문. 할아버지의 목장 운영방식이 수공업적이고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경주마들을 직접 키워 경기에 내보내는 일에 뛰어들었다가 엄청난 빚을 진다. 결국 이 일로 등을 돌린 부자는 안채와 별채에 살면서 서로 말도 안하고 지낸다.

파산한 아버지는 다른 목장의 말 사육사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이 일하는 목장에서 키우는 명마 ‘소냐도르’가 경기 중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목장 주인은 “당장 안락사 시키자”고 하지만, 말의 눈빛만 보고도 몸의 컨디션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벤은 “가능성이 있으니 살리자”고 하다 해고를 당한다. 그는 퇴직금 대신 소냐도르를 집에 데려온다.

이제 영화는 말(語)을 하지 못하는 말(馬)이 언어를 알아도 소통하지 못해 침묵하던 한 가족을 화해시키는 도구가 되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자존심을 접고 할아버지에게 말 치료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서 입을 떼고 처음엔 냉담했던 할아버지도 결국 소냐도르 간호에 나선다.

여기서 중심축은 벤의 열한 살 딸 케일. 당차고 야무진 케일은 대를 이은 목장주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답게 말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언어를 초월하는 소통능력을 가졌다. 케일도 소냐도르를 간호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새로운 소통을 시작한다. 6개월 동안 세 사람의 정성 어린 간호로 소냐도르의 부러진 다리는 기적처럼 회복되고 결국 소냐도르는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경마인들의 꿈인 ‘브리더스컵’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이 영화의 미덕은 걸핏하면 폭력과 욕설이 난무해 영화적 즐거움을 짜증으로 바꿔 버리기 일쑤인 요즘 영화들 속에서 모처럼 가족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 영화적 완성도도 있다.

연기 천재 다코타 패닝(‘아이 엠 샘’에서 루시 역을 맡았던 아역배우)을 비롯해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고 속깊은 할아버지(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인생의 낙오자라는 자책 때문에 사는 데 불만이 많지만, 말(馬)을 다루는 재능만큼은 남다른 아버지(커트 러셀)의 연기는 ‘연기자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다. 대회 출전비를 위해 평생 통조림통에 꼭꼭 숨겨 놓았던 2만 달러를 내놓는 할아버지,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인 목장주를 직접 찾아가 야무지게 설득하는 딸, 학교 행사에서 딸의 편지를 읽다 진심을 알고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 등에선 이국의 사람들과 풍광이라는 이질감이 전혀 없다. 가족이란 어디나 다 똑같은 모양이다.

영화에서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것은 가족에서의 ‘여성의 힘’. 밤마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남편이 실의에 빠질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시아버지와 남편과의 화해를 위해 애쓰는 아내(‘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슈의 변신), 애교와 지혜로 남자들의 야수성을 녹이는 딸, 그리고 인간들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고통을 참고 질주하는 말조차도 암놈이다. 소냐도르는 스페인어로 ‘꿈(dream)’이란 뜻. 13일 개봉. 전체 관람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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