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비엔나, 20세기에 ‘문화의 빛’ 쏘다…세기말 비엔나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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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외관과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실내 장식이 융합된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궁전. 이 건축물은 유럽 절대왕정의 한 축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욕을 간직한 구세대 황금문명의 상징이다. 사진 제공 구운몽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외관과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실내 장식이 융합된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궁전. 이 건축물은 유럽 절대왕정의 한 축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욕을 간직한 구세대 황금문명의 상징이다. 사진 제공 구운몽
◇ 세기말 비엔나/칼 쇼르스케 지음·김병화 옮김/508쪽·3만 원·구운몽

도시는 열병을 앓고 있었다.

세기말, 비엔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썩어 가는 고인 물’과도 같은 요제프 황제 치하에서 몰락하는 구체제 유럽의 모순을 압축하며 분열과 해체의 광풍에 하릴없이 떠밀리고 있었다.

제국의 몰락은 현실과 꿈의 간극 속에 감춰진 불안과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를 폭발시켰다.

20세기의 지적 지형을 바꾼 지크문트 프로이트, 현대건축의 선구자 오토 바그너, 인간 내면을 미술에 투영한 구스타프 클림트, 조성(調聲)을 깨부순 현대음악의 창시자 아널드 쇤베르크,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어 코코슈카…. 이들은 모두 19세기 말 비엔나의 자식들이었다. 아버지 세대에 대항했던 현대적 자아들이었다. 동시대 시공간을 호흡했던 위대한 혁신자들이었다.

이 시기는 흔히 ‘벨 에포크(bell ´Epoque·좋았던 시절)’로 불린다. 그런데 과연 그때가 누구에게나 그렇게 좋고 화려한 시절이었을까?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은 내부에서 솔기가 터져 나가고 있었다. 정치적 위기가 거의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끓어올랐다. 이성의 빛이 인도하던 ‘진보의 세기’는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세기말의 지성사에서 카를 마르크스에서 프로이트로의 전환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없었다. ‘꿈의 해석’은 인간에 대한 탐구와 이해의 범위를 공적이고 사회학적인 영역에서 사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무(無)역사적인(a-historical)’ 우리 세기의 문화를 싹틔웠다. “현대정신은 역사에 무관심해졌다!”

비엔나의 지식인들은 개인의 본성이라는 문제에 사로잡힌다. ‘합리적 인간’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지녔지만 더 위험하고 변덕스러운 존재인 ‘심리적 인간’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이 역사적 개념이 결여된 사고 시스템이며, 그 기원에는 반(反)정치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프로이트는 인간 경험에 대한 세기적 해석을 만들어 내면서 정치를 정신적 힘의 덧없는 표현으로 축소해 버렸다. 그의 이론은 자신의 불우했던 정치적 과거가 스스로에게 가했던 정신적 외상(外傷)을 치유하고자 함이었다. 동료 자유주의자들 역시 거기에 기대 궤도를 벗어나 통제 불가능하게 된 정치적 현실을 감내하고자 했다.”

프로이트가 세기의 저작을 쓰고 있던 1895년에서 1900년 사이 클림트는 예술 분야의 개척자로서 현대회화를 그 생물학적, 해부학적 토대에서 해방시키는 데 몰두했다. 현실의 폐허를 벗어날 출구를 찾고 있던 두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 속으로 뛰어들어 내면의 여행을 떠났다.

클림트가 주도했던 현대회화의 분리파 운동은 삶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혼란스러운 출구를 시각적 형태로 나타낸 것이었다. 새로운 본능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그 몸부림은 코코슈카의 표현주의 회화와 쇤베르크의 현대음악에 그대로 이어진다.

1961년 발간된 이 책은 한 문명의 장엄한 황혼과 경이로운 여명(黎明)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다.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로 있는 저자는 복합적이고 풍부한 삶의 편린들을 세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극히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 한 도시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 내고자 한다.

그 실험적인 지적 여정은 비엔나의 물질문명에서 시작해 정치를 거쳐 가장 추상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에서 막을 내린다.

저자는 격변의 시대에 고뇌하는 지식인과 부르주아의 욕망과 콤플렉스, 자신감의 과시와 결여, 성공과 실패의 우여곡절을 드라마틱하게 펼쳐 보이며 이렇게 결론짓는다.

“세기말 비엔나가 없었다면 20세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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