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18>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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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늘을 가진 뿌리 깊은 나무의 삶도 마치 솜털처럼 가늘고 여린 뿌리털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보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세월은 흘러도 감각만큼은 섬세하게 살려 놓고 싶습니다.―본문 중에서》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친구가 몇 명쯤 있나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내 친구는 아마 수백만쯤 될 거예요. 그렇다고 나를 ‘과대포장 전문가’로 성급하게 단정 짓지 마시라. 내 친구는 사람뿐 아니라 나무와 이름 모를 풀꽃까지도 포함된다. 친구란 함께 대화를 나누고 가슴 에너지를 공유하는 대상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겐 사람보다도 자연이 훨씬 더 포괄적인 친구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새벽마다 집 근처 산에 간다. 하루라도 ‘결석’하면 산에 살고 있는 나무와 풀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기다릴 것만 같다. 나는 풀꽃의 뺨도 만지고 볼도 쓰다듬으면서 재밌게 논다. 나무들에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준다. 그렇게 나름대로 자연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화들짝 놀란 ‘식물학 고수(高手)’를 만났다. 그 주인공은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쓴 이유미 박사다. 나의 식물사랑이 막무가내 ‘초급반’이라면 그의 식물사랑은 차원 높은 고급반의 경지다. 나는 유치한 방법으로 식물과 대화하는 것에 그치는데 그는 나무와 풀들을 지혜 교과서, 지혜의 스승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있다. 식물이 동물보다 DNA 수가 많다는 신기한 사실도 나는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우리 인간은 동물의 범주에 들기 때문에 식물보다 한 수 낮다는 사실은 얼마나 ‘행복한’ 발견인가?

사실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나무와 꽃들을 보면서 우리는 놀라곤 한다. 아니, 어떻게 죽어 있는 것처럼 딱딱한 가지에서 저토록 화사한 꽃송이가 피어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책을 읽으며 더 신비스러운 느낌에 젖는 것은 식물세계에도 ‘생존전략’이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한 과학이 식물세계에 엄연히 존재한다. 가까운 산에 나가 보면 양지 바른 곳에 함초롬히 피어 있는 털북숭이 할미꽃, 온몸에 가시를 뒤집어쓰고 있는 가시연꽃, 자줏빛 족두리, 노란 금붓꽃, 분홍빛 고깔제비꽃을 유심히 살펴보라.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흠뻑 묻어난다.

이렇게 식물들은 가시나 털로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속전속결, 남보다 먼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성전환을 하기도 한다.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영롱한 이슬방울을 달거나 냄새를 피우고 화려한 색깔로 치장도 한다. 이 모두가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

식물이 보여 주는 기기묘묘한 삶의 법칙을 들여다보면 신비스럽기 짝이 없다. 식물의 일생을 계절별로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우리 인간과 어떤 점이 닮고 어떤 점이 한 수 위인지 알려주는 책.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고 나면 각종 공해, 오염물질로 뒤덮인 영혼이 말갛게 ‘샤워’를 하고 난 것처럼 ‘그윽’해진다. 이 책은 자연의 향기에 도취되어 사람이 나무가 되고 풀꽃이 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지혜의 체험서’다.

최윤희 카피라이터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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