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서 밀면 안될 사람 없다”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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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할 안건은 많고 시간은 촉박해 제대로 된 심사나 결정을 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문화재청이 컨트롤하는 대로 흘러가고 점차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것 같아 문화재위원 직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괴감이 든다.”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분과의 한 위원 말이다.》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원의 여동생인 문재숙(文在淑·국악) 이화여대 교수의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지정 외압 시비를 계기로 무형문화재 선정 과정과 제도의 효율성, 선정 이후의 관리방식 등에 잠재해 있는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불투명한 선정 과정’=문화재위원회는 2001, 2002년에 걸쳐 기량 문제를 이유로 문 교수의 보유자 인정을 계속 보류했다. 하지만 지난달 열린 문화재위원회는 기존에 제기돼 온 기량 문제에 대한 조사 없이 다시 심의해 문 교수를 보유자로 인정했다.

심의 과정이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문화재청은 “심의 과정을 담은 회의록은 없다. 작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화재청은 “문 교수 건은 보류된 사안이고 기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량 문제가 해결됐는지 따로 검토할 필요가 없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문화재 위원의 임기가 2년이고 회의록이 없기 때문에 후임 위원들은 전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기 힘들다”며 “문화재청이 시간을 두고 한 사람을 밀어 주겠다고 마음먹으면 못할 게 없다”고 토로했다.

심의 자체도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문화재 위원은 “실력 판단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하지만 많은 안건을 처리하다 보면 형식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무형문화재의 권력화’=보유자는 매달 100만 원의 전승지원금을 받는다. 또 일부 인기종목에선 일단 보유자로 인정되면 각종 대회 심사위원을 도맡아 하고 공연 출연료도 수백만 원대로 치솟는 경우가 많다.

보유자가 전수교육 이수증 발급권 및 전수조교 추천권을 갖는 것도 큰 혜택이다. 이수증이 있을 경우 대학 강단에 서기 쉽고 무대에서 받는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논란이 된 가야금산조의 경우 인기종목인데 10개 계파 중 이례적으로 1개 계파에서 한꺼번에 문 교수를 포함해 2명의 보유자가 나와 다른 계파들의 반발을 샀다.

▽선정 이후의 관리 소홀=현재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111개 종목, 200명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유자로 선정된 뒤 사망 이외의 사유로 해제된 사람은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1명에 불과하다. 문화재 관계자들 사이에선 일부 보유자의 기량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선정된 이후에 이들을 관리할 장치는 전혀 없다.

문화재청에서 무형문화재 업무를 담당했던 이장렬(李長烈) 출판문화진흥재단 사무국장은 “보유자를 명예직으로 바꾸고 인기 분야에 대한 보유자 지정을 최소화하거나 없애야 선정을 둘러싼 시비가 사라질 것”이라며 “재심사 제도의 도입 등 무형문화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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