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무대 같은 삶, 삶 같은 무대…‘윤석화-배우 30년…’

  • 입력 200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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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객석
사진 제공 객석
“안녕하세요. 연극배우 윤석화입니다.”

21일 오후 8시. 서울 대학로 정미소 소극장. ‘윤석화-배우 30년,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 첫날. 첫 곡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한 뒤 윤석화가 등장하자 18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맞았다. ‘스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연극배우가 몇이나 될까.

30년 기념 공연이라는 무게 때문이었을까, 이번 공연을 끝으로 1년간 무대를 떠난다는(미국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예정) 감회 때문일까. 그는 공연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 “공연 마치고 1년간 미국 유학 가요”

“배우로 살아남은 지…벌써…30년이…되었네요. 살면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답다’라는 것입니다. 한창 때 영화나 TV에서 ‘유혹’도 많았지만 윤석화답다, 연극배우답다는 말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했어요.”

가슴선이 보일 듯 말 듯 파인 드레스를 입고, 리본으로 돌려 묶은 긴 웨이브 가발(지난해 연극 ‘위트’를 하며 삭발한 머리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을 쓴 그가 살짝 젖은 듯한 눈으로 무대 위에서 이런 말을 할 때, 윤석화는 참 윤석화답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연극배우 박정자, 가수 조영남 이문세, 영화배우 황정민 등 지인 17명이 매회 한 사람씩 게스트로 출연해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는 자선 토크 콘서트다. 이날은 피아니스트 노영심이 함께했다. 2003년 아들 입양 후 3년째 계속하고 있는 이 자선 행사에 올해는 자신의 연극 인생 30년이라는 의미도 하나 더 얹었다.

“죽음도 나를 죽일 순 없다…. 삶을 정말 치열하게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죠. 지독히 힘들었지만 치열하게 연극의 길을 걸어온 제 자신에게 이번엔 스스로 등을 좀 두드려주고 싶어요.”

○ 지인 17명이 매회 한 사람씩 출연

공연 전, 분장실에서 담배 한 대를 물어 들고 연극 ‘위트’의 대사를 빌려 연극인생을 말할 때도, 윤석화는 참 윤석화답다. 그는 이처럼 무대가 일상 같고, 일상이 무대 같다.

밤 10시. 마지막 곡은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가 불렀던 ‘나의 노래’. “평생 처음으로 관객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벅찬 감동을 느꼈던 곡”이라고 했다. ‘나의 노래’를 열창한 뒤 오래오래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관객들은 열렬히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기립박수는 아니었다. 그의 입가엔 미소가,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눈물의 의미는 열렬한 박수에 대한 감사였을까, 기립박수가 아닌 것에 대한 서운함이었을까. 누군가 ‘앙코르’를 외쳤다. “앙코르…요? 하겠습니다.”

첫 공연의 긴장 탓인지 다소 목이 잠긴 듯했지만 관객의 요청에 기꺼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힘껏 다시 부를 때, 윤석화는 가장 윤석화다웠다.

4월 5일까지. 월∼금 3시 8시, 토 일 3시 7시. 3만 원. 02-3672-3001

■ 스타들이 본 윤석화 “철학있는 조폭 언니”

“철학이 있는 조폭 언니”(한젬마), “못 말리는 누님”(이문세), “추운 겨울에도 향기로운 봄바람을 일으키는 분”(허윤정)….

지인들의 눈에 비친 윤석화의 모습은 어떨까? ‘어메이징 그레이스’ 출연자들은 이번 공연에 앞서 윤석화에게 코믹한, 때로는 진지한 ‘헌사’를 한마디씩 바쳤다.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을 언제나처럼’하는 배우.”(최정원) “‘배우’라는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버리기도 하는 그녀.”(노영심)

윤석화 스스로가 ‘나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꼽은 한마디는 “누나는 예쁜 외계인”이라는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말.

“객석의 눈빛을 보면 고향의 별빛 같아 흥분하여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연극이 끝나면 고향이 그리워 만날 울고. 바쁜 지구인들 붙들고 밤새도록 얘기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하지만 윤석화를 웃게 만든 ‘가장 재미있는 한마디’를 날린 사람은 가수 조영남이다.

“너는 뭐를 너무 많이 했다. 너는 뭐를 너무 심각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무지 피곤했다. 좀 쉬어라. 피곤할 때도 되지 않았냐.”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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