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마을 어귀 정자나무의 주인은

  • 입력 2006년 3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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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충북 옥천군의 한 농촌 마을은 ‘버드나무 송사’로 시끄러웠다.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인 버드나무를 이웃 마을의 T 씨가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수령 200여 년의 버드나무는 밑동 둘레만 4m를 넘는 고목. 요란한 기계톱 소리에 놀라 마을 사람들이 달려 나갔지만 나무는 이미 쓰러지고 난 후였다.

문제는 T 씨가 고목이 서 있는 땅과 주변 논의 주인이라는 것. T 씨는 “나무 그늘이 너무 크다 보니 벼가 자라지 않고 여름에는 논에 벌레까지 떨어지는 등 피해가 많아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을 이장 등은 “그 나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T 씨가 모를 리 없는데 한 차례 상의도 하지 않았다”며 T 씨를 도벌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 사건은 재산권이 올바로 정리되지 않아 생긴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나무에 대한 권리나 그 땅을 샀다면 생기지 않았을 분란이다. 나무를 놔두는 조건으로 T 씨의 농사 피해를 보상해 주는 해법도 있다. 하지만 정자나무로 인한 편익은 마을 사람들이 누리면서 비용만 T 씨가 부담하다 보니 ‘마을의 쉼터’라는 가치 있는 재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도 같은 구조다. 양을 키우는 마을 공유 초지는 양의 수가 늘어나면 금방 황폐해진다. 주민 누구도 초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양의 수를 스스로 줄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법의 하나는 공유지를 분할해 개개인이 관리하는 것이다.

소나 닭에 대해서는 야생 코뿔소와 달리 멸종을 걱정하지 않는 것도 재산권이 설정돼 있어 남획과 밀렵의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명료한 재산권 규정은 현대 사회의 난제인 공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수에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에 대해 ‘오염시킬 권리’를 호수의 어부들에게서 사도록 제도화할 경우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배출량’에 합의하게 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입증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재산권이 명료하지 않으면 자원이 적절한 곳에 투입되지 않고 낭비된다는 것. 혁신적 장사꾼은 사업 성과를 독재자나 부패한 관리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투자를 한다.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미국 하버드대의 로버트 배로 교수는 100여 개국의 1960년 이후 경험에 대한 연구에서 “한 국가의 경제적 번영은 사유재산권과 법치에 기초한 자유시장경제의 육성에 달렸다”고 결론 냈다. 요즘 국내 서점가에서 잘 팔리는 서적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 저)도 국부를 창출하는 4가지 요소를 지목하며 그중 재산권 확립을 첫째로 꼽았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이라 하기엔 너무나 단순한 결론이 바로 경제학의 진리다.

요즘 한국에서도 사학법, 삼성의 8000억 원 사회 헌납, 금융산업개선법, 출자총액 제한 등을 둘러싸고 재산권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재산권은 이념 논쟁의 소재일 뿐 아니라 사회의 효율과도 직결되는 요소다. 거칠게 다루면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그건 그렇고, 경찰에 고소된 T 씨는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주민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처벌할 규정이 없어 무혐의 처리됐다. 아까운 정자나무는 그렇게 사라져 간 것이다.

허승호 기획특집부 부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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