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메커니즘]흘깃 0.013초 “저 남자 멋지네”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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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Baton Rouge School of Computers
사진 제공 Baton Rouge School of Computers
《바쁜 출근시간 지하철역을 뛰어오르는데 누군가 스쳐 지나간다.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흘깃 봤을 뿐인데 왠지 기분이 좋아져 다시 돌아본다. 멋있게 생긴 이성이었다. 순식간에 상대의 얼굴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최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0.013초라는 짧은 시간에 이성이 잘생겼는지 아닌지를 알아차린다고 한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얼굴이다’ ‘그림이다’고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시간은 0.2초로 알려져 있다. 상대에 대한 호감, 즉 감성은 이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발생하는 셈이다.》

○잘생긴 얼굴보면 긍정적 정서 생겨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잉그리드 올슨 교수 연구팀은 고등학교 교과서와 인터넷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의 사진들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 줬다. 올슨 교수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다’ 또는 ‘추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극단적인 두 종류의 얼굴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실험의 핵심은 사진을 보여 주는 시간이 0.001초 수준으로 매우 짧아 미처 ‘볼 수 없는’ 상태라는 점. 실험 참가자들은 모두 매력적인 얼굴이 제시된 후에 ‘멋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놀랍게도 이런 답변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0.013초.

연구팀은 또 매력적인 얼굴을 보여 준 후 ‘웃음’ ‘행복’ 등 긍정적인 단어와 ‘슬픔’ ‘불행’ 등 부정적인 단어를 제시해 반응을 살폈다. 실험 결과 긍정적인 단어를 더 빨리 인지했다. 매력적인 얼굴 대신 건물을 보여준 실험에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심리학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이모션(Emotion)’ 최근호에 소개됐다.

서울대 심리학과 김정오 교수는 “사람이 호감을 갖는 것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는 무의식 상태에서 일어난다”며 “잘생긴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긍정적인 정서가 유발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찰나의 시간에 뇌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사건이 벌어진다는 의미에서 ‘0.001초는 영원이다’라는 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순간적인 정서 반응에 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 단지 0.001초는 신경세포 하나가 다른 신경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시간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사람이 호감을 갖는 시간에 대한 연구는 ‘시선을 붙잡는 데 성패를 건’ 기업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경우.

캐나다 캘리튼대 기테 링가드 교수는 실험참가자들이 홈페이지를 보고 마음에 드는지 를 판단하는 시간이 0.05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내 국제저널 ‘비헤이버 앤드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BIT)’ 1월호에 소개했다.

적외선 이용한 안구 추적장치 안구추적장치는 눈동자에 적외선을 쏘인 후 반사된 빛을 분석해 시선이 모니터에서 움직이는 경로를 포착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무르는 위치를 알아내는 데 사용되고 있다. 사진 제공 AMMA

○홈페이지 여는 순간 호불호 갈려

예를 들어 검색엔진에서 찾은 목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미 호불호를 감지하고 있다는 것.

아주대 심리학과 언어 및 인지처리실험실 최광일 연구원은 “홈페이지에서 고객을 오래 붙들려면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며 “그 내용은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대부분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 먼저 시선을 두며, 검색엔진은 오른쪽 윗부분에 있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회사들로서는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순간적인 감성 자극을 이용한 고전적인 광고 사례는 코카콜라와 팝콘으로 알려져 있다. 1957년 미국의 한 극장에서 영화 화면에 0.0003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코카콜라를 마셔라’ ‘배가 고픈가? 팝콘을 먹어라’ 등의 자막을 넣자 영화가 끝난 후 두 제품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다는 것. 관객들이 실제로 자막을 읽을 수 없었지만 이 자막이 무의식에 호소해 광고 효과를 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영화에 푹 빠져 있는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작은 글자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실제로 이 사례는 거짓말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의식의 영역을 이용한 광고 사례는 이제껏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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