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미술견문기]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사랑과 영혼’

  • 입력 200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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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전문지 ‘롤링스톤’ 1981년 1월 22일자에 실린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사진. 미국 잡지편집인협회가 ‘지난 40년간 가장 멋있는 잡지 표지’ 1위로 뽑은 사진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음악전문지 ‘롤링스톤’ 1981년 1월 22일자에 실린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사진. 미국 잡지편집인협회가 ‘지난 40년간 가장 멋있는 잡지 표지’ 1위로 뽑은 사진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0년 12월 8일 늦은 밤. 존 레넌이 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차에서 내리는 순간 누군가 “미스터 레넌!” 하고 불렀다. 레넌이 몸을 돌리자마자 다섯 발의 총탄이 발사됐다. 즉사했다. 범인은 광적인 팬이었다. 미국과 영국 TV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추도식을 보도했다.

레넌 사망 25주기인 8일, 추모 열기는 미국 영국 일본에까지 물결쳤다. 검은 옷과 선글라스에 하얀 꽃다발을 들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뉴욕 센트럴파크 추모장에 들어서는 요코의 사진을 외신에서 보았다. 문득 2년 전 그녀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국내 첫 개인전 때문에 방한한 그녀를 숙소에서 만났다. 우리는 삶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긴 이야기를 나눴다.

“매일 매일이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숨쉴 수 없는 바다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무조건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실패하면 어쩌지 하고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레넌은 생전에 “요코 덕분에 건달 같던 내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다.

이미 세계적 스타였던 레넌을 만났을 때, 그녀는 무명의 예술가였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의 정점에 서 버렸으나 가진 것을 경멸하며 누구보다 강한 척했던 레넌은 이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사람들은 요코가 레넌과 비틀스를 망친 마녀라고 손가락질했다.

실제의 그녀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목소리에는 정감이 흘렀고 눈빛은 맑고 편안했다. 무엇보다 솔직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달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자는 남자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신체조건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베터(better)’다. 하지만 차별은 존재한다. 이는 독재자가 공포를 조성해 국민을 억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만든 공포와 혼란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이 ‘광대’라고 했다.

“요즘 세상을 나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려는 아이’에 비유하고 싶다. 삶에 절망한 아이가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않고 예술과 노래로 흥미와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광대 노릇을 하는 게 내 일(예술)이다.”

요코는 강한 사람이었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강한 여자였다.

요코의 정신에는 ‘고통의 한가운데 어떤 극심한 고통도 닿지 않은 보호구역’(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중)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남들이 뭐라 하든 그 기쁨의 영역에서 행복해 보였다. 레넌은 요코의 이런 면에 반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레넌의 부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영혼을 교류하는 사랑에는 죽음이 없다는 것을 그녀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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