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기자의 新미술견문기]미술관장의 ‘절대 권력’

  • 입력 2005년 12월 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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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장이 권력이라고요?”

미술관장의 독단적 운영에 항의해 작품을 철수한 중견 서양화가 안창홍 씨를 다룬 기사(1일자 A21면)를 읽고 한 독자가 이렇게 물어왔다. 미술처럼 순수한 영역이 어떻게 권력이라는 투쟁적 단어와 연결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술관장은 권력이다. 그것도 미술계에서는 절대 권력이다.

첫 번째 이유는 전시하고 싶은 작가는 많은데 공간은 부족한 수요 공급의 불일치 때문이다. 미술작가에게 전시는 가수가 음반을 내는 것이요, 작가가 책을 내는 행위와 같다. 우리나라의 미술관은 국공립과 사립(개인·기업이 출연해 세운 미술관)을 합쳐 총 78개다. 그러나 작가는 무려 2만5000여 명에 이른다. 엄청난 경쟁이다. 미술관에서 전시를 여는 작가들은 이런 바늘귀 경쟁을 뚫은 실력파들이다.

둘째 이유는 미술관 전시가 부여하는 영예 때문이다. 작품을 사고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전시 그 자체가 목적인 미술관 전시는 상업화랑(갤러리) 전시와는 달리, 작가에게 공익적 대중적 미술사적 권위를 부여한다. 미술관 전시 경력은 작가들의 교수 임용 자료로까지 활용된다. 미술관에서는 또 작가에게 작품과 화집 제작비를 지원하고 홍보도 해 주기 때문에 판매와 마케팅까지 신경 써야 하는 화랑 전시와 달리 작업에만 몰두하면 된다.

스타가 돼도 작가는 미술관 앞에서 아무래도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이번 안 화백 사건은 역학 관계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작가가 미술관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초유의 일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저항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박수 받을 일은 아니지만, 모든 권력이 그렇듯 미술관장의 권력도 남용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화단은 게을렀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리더는 그 나라의 권력지형도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며 그들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미술관 운영을 요구하는 것은 미술인을 넘어 국민의 권리다.

외국의 경우에도 전문성과 행정력을 두루 갖춘 미술관장을 뽑는 게 어려워 오랫동안 공석으로 비워두는 곳이 많을 정도다. 유능한 관장 한 명이 미술관은 물론 그 나라 미술계 전체에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가져 오는 경우도 많다.

27세에 뉴욕 근대미술관장이 된 앨프리드 바(1902∼1981)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의 탁월한 전시 기획력과 합리적인 운영에 힘입어 뉴욕은 유럽을 제치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으로 우뚝 섰다.

미술관장에 저항했다는 게 뉴스가 아니고 스타 미술관장의 탄생이 뉴스가 되는 미술계를 기대해본다.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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