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辭2000여편 DVD로 집대성한 임기중 동국대 명예교수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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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임기중 교수의 개인 연구실인 한국문학연구소. 올해 67세인 임 교수는 “요즘 시대에도 컴퓨터를 쓰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교수들은 진정한 학자라 할 수 없다”며 2000여 편의 가사를 집대성한 DVD 활용법을 설명했다. 전영한 기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임기중 교수의 개인 연구실인 한국문학연구소. 올해 67세인 임 교수는 “요즘 시대에도 컴퓨터를 쓰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교수들은 진정한 학자라 할 수 없다”며 2000여 편의 가사를 집대성한 DVD 활용법을 설명했다. 전영한 기자
“조선시대 한글로 쓰인 대표적 문학 장르로 사람들은 흔히 시조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대표적 장르는 바로 가사(歌辭)입니다.”

사람들은 가사라고 하면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정도만 떠올린다. 최근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정극인의 ‘상춘곡’ 정도가 추가될까.

그러나 4음보의 운문체로 된 가사는 조선시대 500여 년을 대표하는 문학 장르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가사체로 시도 짓고, 일기 편지 기행문을 쓰고, 종교경전을 읊고, 제문까지 지었다. 개화기에는 신문기사도 가사체가 주종이었다. 한글소설이 최대 1000편, 시조의 작품수가 4500여 수인데 비해 가사는 전승되는 작품 수만 7000여 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임기중(林基中·67·국문학) 동국대 명예교수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이런 가사에 주목했다. 그러나 당시 국문학계에서 가사는 희귀 장르였다.

“신라 향가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학비를 벌려고 40여 편의 가사를 소개한 ‘조선조의 가사’(성문각)라는 책을 펴냈는데 당시 국문과 교수님 중 한 분이 그 책을 보시고는 ‘우리나라에 가사가 이렇게 많았나’라고 하시더군요.”

임 교수는 이후 30여 년간 전국에 산재한 가사작품을 하나둘씩 모았다. 그는 이렇게 모은 2000여 편의 작품들을 1987∼1998년 11년에 걸쳐 영인한 ‘역사가사문학전집’(전 51권)으로 펴냈다.

그러나 영인본은 옛날 표기 그대로 실려 독해의 어려움이 컸다. 임 교수는 다시 3년에 걸쳐 이 원문을 현행 띄어쓰기로 풀어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 그의 수업을 거쳐 간 학생 수백 명의 리포트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작업을 완료한 뒤에는 고어와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내는 해제와 주석 작업에 다시 5년을 투입했다.

그 결과물이 2496편의 가사작품 원문과 그 중 이본(異本)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2015편에 대해 해제와 주석을 달아 DVD에 수록한 ‘한국 역대 가사문학집성’(누리미디어)이다. 지난주 발매된 이 DVD에는 고려 말 나옹 화상이 지었다는 ‘서왕가’부터 최근까지 가사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소고당(紹古堂)의 현대가사까지 포함돼 있다.

“가사작품은 길기 때문에 중간중간 변형이 이뤄진 다양한 이본들이 존재합니다. 이제 제가 기초 DB를 구축했으니 원본과 이본의 구별, 각종 통계 분류, 장르적 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개인연구실에서 만난 임 교수는 고려 말∼조선 말까지 중국 베이징(北京)을 다녀온 사신과 학자들의 기행문인 ‘연행록’ 350종을 집대성해 100권으로 엮어낸 ‘연행록전집’(2001년)을 150권(500종)으로 확대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명색이 교수라면 평생의 학문주제를 3개는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제게 그것은 향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사작품 수집·정리, 동아시아 외교사와 문화교류의 보고인 연행록의 수집·정리였습니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연구 성과에만 급급해 하는 요즘 같은 시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씨앗을 골라 오랜 세월 들판에서 키우고, 말년에 이를 수확해 다른 이들의 밥상에 정성껏 올려놓는 농부와 같은 노 교수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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