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진정한 평등의 구현…‘자유주의적 평등’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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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적 평등/로널드 드워킨 지음·염수균 옮김/725쪽·3만 원·한길사

로널드 드워킨 뉴욕대 교수는 현대 법철학의 대가로 꼽힌다. 지난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법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논파한 ‘법의 제국’(아카넷)이 번역된 데 이어 이번에는 정의의 한 요소로서 평등에 대한 그의 정치철학을 정리한 ‘자유주의적 평등’이 출간됐다.

드워킨은 ‘정의론’을 발표한 존 롤스 이후 자유주의적 전통에서 평등의 의미를 가장 심도 깊게 논의한 학자로 꼽힌다. 자유주의는 흔히 평등보다 자유를 더 강조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드워킨은 평등이야말로 정치공동체의 최고 덕목(이 책의 원제인 Sovereign Virtue)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롤스와 함께 자유주의 좌파(Liberal left)로 분류된다.

드워킨이 말하는 평등은 재산의 분배나 권력의 분배와 같은 구체적 평등이 아니다. 그는 국민 모두에게 균등한 재산을 보장해야 한다는 구좌파의 평등을 개미의 몫을 빼앗아 베짱이에게 나눠 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말하는 평등은 정치지도자라면 국민을 평등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적 평등이자 추상적 평등이다. 드워킨은 이런 평등을 포기한 정부는 독재정부라고 단언한다.

드워킨은 평등을 둘로 분류한다. 자원의 평등과 복지의 평등이다. 자원의 평등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동등하게 자원을 나눠 주는 것이고 복지의 평등은 각각의 능력과 처지를 고려해 이를 차등 분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자신의 재산을 두 아들에게 똑같이 분배한다면 이는 자원의 평등이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건강한 아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분배한다면 이는 복지의 평등이다. 롤스를 비롯한 현대적 복지주의자들은 복지의 평등을 지지한다.

그러나 드워킨은 복지는 평가의 척도로 삼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자원의 양적인 동등 분배를 지지한다. 하지만 모든 자원을 동등 분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드워킨은 여기서 평등실현의 적극적 도구로 시장을 제시한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양의 화폐를 나눠 주고 각자가 원하는 자원을 경매로 구입하도록 하는 시장제도가 평등을 구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주식투자와 같은 ‘선택적 운’과 선천적 장애, 질병 같은 ‘눈먼 운’을 구분한다. 선택적 운에 대해서는 개인이 책임져야 하지만 눈먼 운에 대해서는 보험에 의한 보상에 해당하는 국가의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시장이냐 복지냐 하는 이분법이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시장과 평등, 개인적 자유와 공동체적 가치를 하나로 접목시키려는 이 책의 진지한 논의는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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