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탁]한글날을 ‘문화의 날’로

  • 입력 2005년 10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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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은 분명히 ‘글’이다. 그런데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은 ‘글’이 아니라 ‘말’이라고 명명했다. 글이라면 훈민정문(訓民正文)이 되어야 할 텐데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서도 현군(賢君)으로서 세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고 본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이 사실을 명(明)나라에 알려야 하는데 세종은 양국 간의 쓸데없는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글이 아니라 말로 포장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조선이 독자적인 글을 만든다는 것은 당시의 국제정치질서 및 정서에 비추어 볼 때 명과의 사대친선 관계를 소홀히 여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어서 시비걸기가 쉽지 않다. 세종의 이 같은 고려 덕분에 한글이 지금까지 우리의 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세종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해했던 한글학자 주시경이 500년이 지나서 비로소 ‘한글’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 아닐까.

그런데 세종의 혜안이 어디 그뿐일까? 세종은 세계 역사상 최고의 계몽군주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와 있는 한글 창제의 목적을 접하면 눈시울이 저절로 젖는다. ‘백성을 어엿비(불쌍히) 너겨(여겨)’라는 부분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동서양의 어떤 훌륭한 계몽군주가 과연 이렇게까지 백성을 생각했을까? 대부분의 군주는 ‘백성이 무지해야 지배하기 쉽다’고 생각하며 글의 보급을 막았던 것이 세계사의 기록 아닌가?

또 세종은 최고의 문화 군주임에 분명하다. 현존하는 세계 어떤 글도 한글처럼 창제일과 목적, 원리 그리고 그 사용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문자는 없다. 게다가 한글은 24자(창제 당시에는 28자)라는 가장 적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이는 한글이 그만큼 과학적임을 증명하는데 이런 글을 만드는 것은 당시의 문화적 수준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훌륭한 한글이 후손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참담한 일이 이미 오래전부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나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에서 이루어지는 한글 훼손은 구구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기에 너무나 참담할 지경이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중 으뜸가는 일은 한글날을 ‘문화의 날’로 바꾸고 그날을 민족 최대의 문화축제일로 삼는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실 문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언어이다. 대부분의 문화가 언어를 통해서 매개되고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민족 최대의 문화축제일을 통해서 ‘한글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문화 창달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차제에 이달 말 서울 용산에서 새로 문을 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전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한글의 소프트웨어 중 하나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현재 단 1부만 남아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 문화재 지킴이’였던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선생이 일제강점 말기에 이를 발굴해 간송박물관에서 지금까지 잘 보존해 온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로, 만약 해례본이 없었다면 한글의 과학적 창제 원리는 밝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한글 자모음의 모양이 발성기관과 천지인(天地人)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해례본을 통해서만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한 나라의 문화 교과서요, 문화적 자존심’이라면 마땅히 그곳에는 한글 관련 핵심 자료들이 소장 전시돼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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