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 ‘셜리 발렌타인’서 11년만에 비키니 입고 열연

  • 입력 2005년 5월 18일 0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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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조세현 사진작가
사진제공 : 조세현 사진작가
17일 오후 8시, 연극 ‘셜리 발렌타인’이 막을 올린 소극장 산울림.

2막 시작 20여 분 후, 그리스 해변가에 온 중년 주부 셜리를 연기하던 손숙(61) 씨가 가운을 벗어던졌다. 수영복 차림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시종 웃음이 끊이지 않던 객석은 숨죽인 듯 조용해졌고 관객들은 그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몸무게가 47kg이라는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씬했다. ‘중년 살’이 붙기 쉬운 팔뚝은 군살 없이 가늘었고 허리는 잘록했다. 선탠 효과를 내는 스프레이를 뿌렸다는 그의 몸은 건강한 구릿빛이었다.

11년 전, 벽을 벗 삼아 혼자 수다를 떠는 중년 주부 셜리 발렌타인을 열연했던 그는 이렇게, 또다시 사랑스러운 셜리가 되어 관객 곁으로 돌아왔다.

○ 11년 만에 다시 보는 ‘수영복 열연’


자식과 남편에게 얽매여 살던 셜리는 권태로운 일상을 훌훌 털고 그리스로 떠난다. 셜리는 그리스에서 코스타라는 남자를 만나 해변에서 사랑을 나눈다. 1994년 초연 당시 손 씨는 이 장면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해 ‘수영복 열연’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 그는 두 벌의 비키니와 한 벌의 원피스 수영복을 준비했다. 그는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골라 입겠다”고 했다. 최종 드레스 리허설 때 연두색의 비키니를 입었던 그는 이날 공연에서는 허리선이 잘록하고 다리 라인이 깊게 파인 원피스 수영복을 택했다.

“요즘 세상살이도 힘든데 주부들이 즐겁게 봐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손숙이 그 나이에도 비키니 차림으로 무대에 선다는데, 그게 뭐 어떠냐, 그것도 재밌더라, 이렇게들 생각하고 마음껏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장관까지 지낸 그가 수영복 차림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그는 이에 대해 “나는 배우일 뿐”이라며 “작품에서 필요한 장면인 만큼 당당하게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랜 관록의 배우답게 “소극장이다 보니 코앞에서 수영복을 입은 나를 볼 관객들, 특히 남자 관객들이 오히려 더 당황하거나 민망해 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하하, 웃는 여유도 보였다.

○ 1994년 셜리 vs 2005년 셜리

1994년 공연 때 셜리의 극중 나이는 당시 손 씨의 나이(50세)와 엇비슷한 46세. 이번 공연에서는 손 씨의 나이를 감안해 셜리의 나이를 48세로 올렸다.

초연 때는 실험극장에서 고 김동훈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졌다. 15가지 역을 혼자 소화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1인극이었지만 손 씨의 열연과 ‘중년 주부의 잃어버린 자아 찾기’라는 메시지가 당시 주부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대리 만족을 주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이번 공연은 영국 초연 때 연출을 맡았던 오리지널 연출가 글렌 월포드 씨의 손에서 더욱 섬세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듬어졌다.

여성 연출가인 월포드 씨는 손 씨에게 ‘주부 연습’을 혹독하게 시켰다. 프로 주부 셜리가 어설픈 손놀림을 보였다간 주부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 덕분에 그는 첫 공연에서 능숙한 솜씨로 고소한 감자튀김을 무대에서 요리해 내 객석에 군침을 돌게 했다.

밤 9시 45분.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은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한 여배우에게 큰 환호성과 함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손 씨는 다음날 영국으로 출국하는 연출가를 무대로 불러내 감사를 표했다. 공연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월포드 씨는 그를 껴안으며 서툰 한국말로 인사했다. “숙, 사랑해.”

7월 17일까지. 목∼토 오후 3시 8시, 일 오후 3시. 2만∼4만 원. 02-334-5915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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