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 기행]춤추는 鄕愁…헝가리 부다페스트

  • 입력 2005년 4월 21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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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를 건국한 왕이며 성인으로 칭송되는 슈테판 1세의 기마상이 세워진 부다의 언덕. 도나우 강 건너 페스트 지역에 헝가리 의회 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사진 정태남 씨
헝가리를 건국한 왕이며 성인으로 칭송되는 슈테판 1세의 기마상이 세워진 부다의 언덕. 도나우 강 건너 페스트 지역에 헝가리 의회 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사진 정태남 씨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부다의 언덕에 올라서면 ‘도나우 강의 여왕’ 또는 ‘도나우 강의 진주’라고 불리는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기품 있는 도시 풍경 뒤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향수(nostalgia)가 어려 있는 듯하다. 마치 헝가리 집시 음악이나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라고나 할까. 부다페스트라는 지명은 도나우 강 우측의 부다와 좌측의 페스트가 1873년에 합병돼 생긴 것으로, 헝가리인들은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언덕으로 이뤄진 부다 지역에는 부다 성(城), 마티아스 교회를 비롯한 역사의 중심지와 조용한 주택가가 있고, 평지로 이루어진 페스트 지역에는 상업 중심지, 미술관, 오페라 극장, 의사당, 음악원이 있다. 상업 중심지에서 동북쪽으로 대략 2.5km의 대로(大路) 네프쾨즈타르샤샤그는 ‘영웅의 광장’으로 연결된다. 이 대로변에는 1907년에 설립된 유명한 리스트 음악원이 있다. 음악원 건물의 중앙 입구 상부에는 리스트 페렌츠(Liszt Ferenc·리스트 프란츠의 헝가리식 이름)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 아래에는 영웅적인 모습을 한 리스트 동상이 올려져 있다. 헝가리인들은 우리처럼 성(姓)을 이름 앞에 쓴다. 독일계 헝가리 사람이었던 리스트는 헝가리 말을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리스트만큼 헝가리를 빛낸 사람은 누가 있을까?

○ 브람스의 ‘춤곡’ 리스트의 ‘광시곡’ 도나우강 넘실

리스트 음악원에서 영웅의 광장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나를 따라 집시들도 함께 탔다. 운전사는 뒤를 돌아보며 주의하라고 알려줬다. 헝가리인들은 집시들을 ‘치가니(czigany)’라고 부르는데, 그들의 손버릇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수세기 동안 헝가리인의 불신과 냉대 속에서 살아 오고 있는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 불 같은 리듬과 달콤하고 애수에 젖은 멜로디를 선보이는 바이올린 연주자 등 다른 집시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대부분 19세기에 작곡된 것으로 민속적 색채가 강하다.

부다 지역의 중심인 마티아스 교회

헝가리인들은 19세기 바이올린의 명수 ‘판나 칭카’라는 집시 여인을 기억한다. 미모가 빼어났던 그녀는 자신의 악단과 함께 궁정에서도 연주했으며, 프랑스의 대음악가 베를리오즈도 감동시켰다. 그녀의 음악은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있는 헝가리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다.

집시 음악은 헝가리의 고유 민속 음악과 다르다.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도 집시음악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 헝가리 고유 음악이 아니다. 또 리스트의 음악은 서유럽의 음악이지 헝가리 고유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

○ 서민들에 내려오던 고유음악 20세기 들어 재발견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귀족들은 서유럽의 전통음악을, 서민층은 고유민속음악과 집시음악을 선호했다. 그런데 고유음악과 집시음악은 오랫동안 공존해 왔기 때문에 구분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순수한 헝가리 고유 음악을 찾으려는 노력은 19세기에 시작돼 20세기 초 졸탄 코다이와 벨러 버르토크에 의해 본궤도에 올라섰다.

동갑내기인 두 음악가는 리스트 음악원 재학 시절 만나 농촌과 산간벽지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민요들을 당시 최신 과학 기재였던 축음기로 채집하고 고유의 음악유산을 체계적으로 탐구했다.

이들은 종족 간의 서로 다른 음악을 비교 연구하는, 이른바 ‘종족음악학자’로 불리며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들었다.

고유 음악 유산과 한 사회의 음악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학식을 갖춘 음악가가 현실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음악가 코다이와 버르토크는 이런 목적을 위해 헝가리인들이 사는 땅을 구석구석 여행하며 연구했다.

버스가 영웅의 광장에 도착했다. 기념비적인 이곳에는 9세기 때 유럽 중원 동쪽에 나라를 세운 헝가리 일곱 부족장과 헝가리를 지켜 온 영웅들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신성한 곳인 셈이다.

헝가리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영웅들의 이름을 여행자의 입장에서 모두 기억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이 광장에서 헝가리 고유의 음악을 되찾으려 했던 두 음악가의 이름을 한 번쯤 되새겨 볼 뿐이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리스트 음악원

▼종족음악 기틀 세운 ‘코다이-버르토크’▼

코다이와 버르토크는 독일 낭만파의 화성법과 결별하고 잊혀져가는 헝가리 고유음악을 재발견했다. 두 사람은 이를 음악 창조의 기본으로 삼아 헝가리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코다이는 헝가리가 공산화된 뒤에도 조국에 남아 창작과 음악교육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음악교육 과정에 헝가리 민요를 도입해 국민의 음악적 취향을 바꿔 놓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은 부다와 페스트 병합 50주년을 기념해 작곡한 테너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헝가리 시편’이다. 이 작품에는 헝가리적 요소가 그의 작곡 기법에 완전히 흡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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