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쾌락의 혼돈’…明나라의 富, 그 빛과 그림자

  • 입력 2005년 2월 4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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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 베이징의 사회상과 생활을 묘사한 ‘황도적승도(皇都積勝圖)’ 중 점포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 명대는 건국초기 농업생산에 기반한 자급자족사회를 추구했지만 이는 오히려 상업과 무역의 발달을 낳았다.사진제공 이산
명대 베이징의 사회상과 생활을 묘사한 ‘황도적승도(皇都積勝圖)’ 중 점포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 명대는 건국초기 농업생산에 기반한 자급자족사회를 추구했지만 이는 오히려 상업과 무역의 발달을 낳았다.사진제공 이산
◇쾌락의 혼돈/티모시 브룩 지음·이정 강인황 옮김/400쪽·1만8000원·이산

중국 역사상 한(漢)족 중심의 통일국가는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은 한(漢), 유교를 심화시킨 성리학을 벼려낸 송(宋), 도덕 함양과 국가경영을 하나로 융합하려 했던 사대부(士大夫)의 나라 명(明)이 꼽힌다.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비슷한 시기에 건국된 명을 모델국가로 삼았고 사대(事大)의 예를 다했다. 소중화(小中華)를 꿈꾸며 중국의 아류가 되길 바랐고, 명이 청에 멸망당한 뒤에도 명의 마지막 황제의 연호 숭정(崇禎)을 사용할 만큼 앙모했다.

그런 조선의 사대부가 이 책을 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2000년 전미 아시아학회에서 중국 관련 최고 저술에 수여하는 조지프 레벤슨 상을 수상한 이 책은 명대의 상업발전과 이로 인한 문화사적 변화를 ‘쾌락’과 ‘혼돈’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농업 중심의 성리학적 이상은 명을 건국한 홍무제 주원장(朱元璋·1328∼1398)의 시대에 국한된다. 기근으로 부모를 잃고 어린 시절 구걸로 연명해야 했던 주원장은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들리는 이웃마을에도 갈 필요가 없을 만큼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업국을 이상적 국가로 삼았다. 그는 백성의 이동거리를 12km로 제한했고, 사농공상(士農工商) 간의 사회적 이동조차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를 통해 농촌이 안정되고 생산이 증대하면서 잉여농산물이 생김에 따라 오히려 상업의 번창을 낳았다. 국가 운영을 위해 육로와 수로의 정비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물자와 인력의 이동이 왕성하게 이뤄졌고 도시의 발달을 낳았다.

안정기에 접어든 뒤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명의 인구는 14세기 말 이미 6000만 명을 넘어섰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인구는 흑사병의 유행으로 600만 명에서 220만 명으로까지 줄었다. 명은 상업 발달로 비단과 도자기를 전 세계에 수출했고 유럽과 남미, 일본의 은이 대거 중국으로 유입됐다. 명의 3대 황제인 영락제 시절 제주도에서 표류하다 중국 대륙을 종단해 조선으로 돌아온 최부(崔溥)가 ‘표해록’에서 항저우(杭州)를 보고 “완전히 별천지로다” 하고 놀랐을 만큼 거기에는 수많은 상선과 상가가 즐비했다.

명의 상업적 발달은 문화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목판 인쇄술의 발달로 개인 문집과 총서는 물론 지방잡지와 신문까지 발간됐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1만 권의 책을 소장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또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예술품과 골동품 수집 붐과 패션의 유행이 생겨났다. 심지어 명승고적 관광의 바람이 불면서 마을 아낙들이 떼 지어 여행을 다니고 여성에게 성을 파는 오늘날의 호스트 바 문화까지 출현했다.

물론 명의 사대부들은 이런 상업의 발달과 쾌락 추구를 말세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고의 부를 구가한 명의 사회상은 분명 조선이 기대하고 꿈꿨던 그런 사회는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더 가까웠다. 명대의 사대부들이 명청(明靑) 교체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자신들이 비판했던 상인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캐나다의 역사학자가 수백 년 전 중국의 역사를 이처럼 세밀하게 검토한 책을 낼 동안 과연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던 명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원제 ‘The Confusions of Pleasure: Commerce and Culture in Ming China’(1998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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