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들’, 장례식 등 다큐멘터리 장면은 빼야”

  • 입력 2005년 1월 31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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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 등의 기록화면이 ‘관객에게 영화가 실제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며 삭제하라고 결정했다. 사진은 영화 속에 삽입된 장면이 아니라 당시를 기록한 본보의 자료.
법원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 등의 기록화면이 ‘관객에게 영화가 실제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며 삭제하라고 결정했다. 사진은 영화 속에 삽입된 장면이 아니라 당시를 기록한 본보의 자료.
“장례식이 열릴 때 나오는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의 추모 기도 목소리는 내가 이 영화를 생각하게 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내 뇌리에 박힌….”

지난달 24일 ‘그때 그 사람들’의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상수(林相洙·43) 감독은 ‘왜 굳이 다큐멘터리 화면을 써야 했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기도 목소리를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어떤 장면이 삭제됐나=영화 전체에서 픽션과 확연히 구분되는 도입부와 끝 부분의 기록화면과 목소리 세 부분이다.

▶ 영화 ‘그때 그사람들’ 일부 삭제 결정, 어떻게 생각? (POLL)

첫 번째는 영화 도입부에 삽입된 1979년 부마항쟁의 시위 장면. 화면 위로 극중 가수 심수봉 역으로 출연한 김윤아의 목소리로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게도 박정희는 총에 맞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두 번째는 김 추기경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장례 당시의 추모 기도. 화면이 까맣게 지워진 채 “주여, 인자로이 주의 종 박정희를 돌아보소서”라는 김 추기경의 목소리가 흐른다.

세 번째는 김 추기경의 목소리에 이어 큰딸 근혜(槿惠) 씨가 묵념하는 모습 등이 담긴 장례식 당시의 기록 화면으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배우들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각하’라고 부를 뿐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실명이 언급되지 않는다.

▽어떤 장면이 인정됐나=원고 측이 문제삼은 장면 중 △‘각하’가 헬기 안에서 음담패설을 하고 일본어를 사용한 장면 △만찬장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을 상상하는 장면과 젊은 여자의 품에 기대어 엔카에 심취해 있는 장면 △‘각하’가 총을 맞은 뒤 “김 부장, 또 쏠라꼬? 한 방 묵었다 아이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장면 △‘각하’의 시신 음부를 모자로 덮는 장면 등에 대해서는 삭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영화의 일부 장면이 고인(박 전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갖게 하지만 영화 상영 자체를 금지시키려면 주관적인 명예감정의 침해뿐 아니라 객관적인 사회적 평가가 저해됐다고 인정돼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표현자유 침해 논란=제작사인 MK픽처스는 재판부에 이의신청을 하는 한편 문제되는 3분 50초 분량의 화면을 아무 내용 없이 까맣게 처리해 2월 3일 개봉할 계획이다. 영화인회의(이사장 이춘연)는 법원 결정 직후 “사실과 허구의 구분이 모호한지 아닌지는 관객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번 결정은 실존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최근의 영화제작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삭제 결정된 장면들

△부마항쟁 시위 장면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김수환 추기경이 추모하는 장면

△박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다큐멘터리 장면

▼법원, 상영금지 가처분 수용 이례적▼

법원이 일부이기는 하지만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원은 최근 ‘실미도’ ‘형’ ‘조폭 마누라 2’ ‘예수의 마지막 유혹’ 등의 영화에 대해 관련자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적이 있지만 모두 기각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왔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정이 좀 달랐다. 1998년 5월 성철 스님의 딸 불필 스님과 제자들이 성철 일대기를 그린 영화의 제작사를 상대로 냈던 영화제작 및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법원은 신청인 측의 주장을 대폭 받아들인 재판상 화해로 사건을 맺도록 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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