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주희(朱憙):중국철학의 중심’

  • 입력 2004년 12월 10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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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憙):중국철학의 중심/조남호 지음/249쪽·1만2000원·태학사

우리는 중국 송나라에서 발흥해서 원나라에서 체제 교학이 되었고 오랫동안 조선의 학술계를 풍미했던 사상을 뭐라고 부를까? 열에 아홉은 재빨리 성리학 또는 주자학으로 답할 것이다.

저자(국제평화대학원대 교수)는 이 즉답의 유효성과 정당성을 한번 재론해 보자며 날 선 논쟁의 장을 펼친다.

저자는 먼저 주자학과 주희 철학의 용어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주자학’이라는 호명이 학문과 권력의 성공적인 동맹을 가리킬 수는 있지만 오히려 실존 인물로서 주희의 사상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주자학은 주희의 사후에 옹호자나 비판자의 눈을 통해 ‘주자’에게 착색된 가공의 집적물이다.

반면 주희 철학은 역사적 존재로서 주희가 동시대 경쟁자들과 지적 대결을 벌이면서 한 걸음씩 쌓아서 이룩해 낸 학문의 내적 구조를 가리킨다.

이제 우리는 주희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간명하게 정리됐으나 매개로 얼룩진 우회로와 다소 복잡한 듯하지만 목적지를 향해 쭉 뻗어 있는 탄탄대로 중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시점에 이른 셈이다.

우리는 주자학(주희 철학)하면 이기론(理氣論)을 연상한다. 아니 연상이 아니라 우리는 그 둘을 동일시한다.

저자는 ‘주자어류’를 오랫동안 강독하면서 주희의 주장을 꼼꼼하게 따져본 내공에 힘입어 이 등식의 신화를 걷어내려고 한다. 동양 철학 연구자들은 서양 철학의 도전에 맞서 “우리에게도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성찰이 있었다”고 대응하기 위해서 주자학을 이기론(존재론) 중심으로 조명했던 것이다.

저자는 ‘주자어류’ 앞부분을 제외하면 주희가 이기론이 아니라 공부론(工夫論)에 자신의 학문적 관심을 집중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주희는 사변적 이성을 발휘해 형이상학의 체계를 건립하려고 하지 않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게 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원래 공부라는 말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일상 언어였지만 신유학자들에 의해 부단한 학습을 통해 도달하는 인격수양의 맥락으로 쓰이게 되었다. 현재 중국어에서 ‘쉐시(學習)’를, 일본어에서 ‘벤코(勉强)’를 쓰는 것과 달리 한국어에서 아직 공부라는 말이 살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말을 진실한 사람이 되는 과정의 문맥이 아니라 대학 입학을 성취하기 위해 쏟는 학습 노동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해 전통시대와 현대의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재확인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주희의 철학을 정해하는 데에 무게 중심을 두어서 그런지 잘못된 해석(모종삼 이정우 등)에 대해 규범적 비판을 주저하지 않지만 ‘중국 철학 해석과 비판’ 총서 시리즈 발간에서 밝힌 ‘중국 철학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최근 주희의 손을 거친 저작들이 앞 다투어 소개되고 있다. 올해 아카넷과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란히 출간된 ‘근사록 집해’를 비롯해 ‘주자어류’(청계·소나무), ‘사서집주’(전통문화연구회·학고방) 등이 새롭게 번역됐다. 이로써 일반인들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신유학의 세계를 직접 맛볼 수 있는 상차림을 받아 보게 됐다.

정독을 한다면 과연 주자학과 주희 철학이 왜 구분되어야 하는지, 양자의 초점이 이기론과 공부론 중 어디에 있는지 나름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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