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까불지마’ 오지명의 비밀

  • 입력 2004년 12월 8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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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청바지에 짧은 잠바 차림, 지프를 터프하게 몰고 나타나는 첫 장면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각본과 주연을 겸하며 오지명이 65세에 감독 데뷔한 영화 ‘까불지마’. 그가 이번에도 똑같을 거라는 예상으로 극장을 찾는다면 큰코다친다. ‘까불지마’는 휴먼 코미디지만, 오지명의 두 가지 비밀이 숨어 있는 영화다. 우선 오지명에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수컷 본능이 용솟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몸으로 ‘수컷’ 본능 과시

15년간 복역하고 나와 자신을 배신한 후배의 딸(가수)의 보디가드가 된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의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오지명의 얼굴과 표정이다. 인중이 길고, 눈매가 뚜렷하고 매서운 데다 콧대가 크고 굵고 길며, 귓불이 육중하다. 앙다문 얇은 입술의 오른쪽만을 씰룩거리며 씹어뱉듯 말하는 그의 얼굴은 웃기기는커녕 살벌한 쪽에 가깝다(사진①). ‘개떡’이라는 극중 이름으로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 그는 더 이상 ‘시트콤의 황제’가 아니다. ‘다치마와리(맨손싸움)’ 영화에서 활약하던 1960, 70년대(사진②)로 되돌아가 있는 것이다. 시트콤에서 그가 맡았던 캐릭터가 남긴 고정관념과 달리 오지명의 얼굴은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넘치는 ‘수컷’의 그것에 가깝다. 그는 이 영화에서 중지(中指)의 관절이 툭 튀어나오게 주먹을 쥐는 습관을 보여주는데, 이는 “대구상고 ‘짱’이었다”고 스스로 밝힌 대로 화려했던 오지명의 학창시절을 증언하는 것이다.

오지명은 몸을 많이 굴린 흔적을 드러낸다. 극중 동료인 벽돌(최불암)과 원숭이 제스처를 선보이는 이 부지불식간의 동작(사진③)에서도 그는 한 살 아래인 최불암(왼쪽)보다 훨씬 동물적이고 유연한 몸동작을 크게 보여준다. 에너지가 넘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순풍 산부인과’ 속 동작(양팔을 어깨 높이로 들어올리고 전방을 잇달아 찌르면서 더듬더듬 말하는)은 영화 ‘까불지마’에서 교묘하게 변주된다. 시트콤을 연상하고 조건반사적으로 웃으려다 보면 의외로 섬뜩한 느낌에 당혹스러워진다. ‘순풍…’의 동작이 무릎을 낮추고 얼굴을 어깨선까지 끌어내림으로써 ‘소시민적인 자신감 없음’을 풍기는 데 반해 무릎을 쫙 펴고 고개를 파묻지 않은 채 두 팔을 들어올린 영화 속 제스처는 ‘너 죽어볼래?’ 하는 위압적 느낌을 주는 것이다.

대사는 시트콤 스타일

오지명은 몸을 통해 시트콤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지만, 동시에 시트콤의 이미지를 업고 가는 지능적인 전략도 꾀한다.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의 대사마저 여전히 더듬거나 특정 단어를 무지하게 반복하며 말하는 고유의 말하기 기술을 구사한다.

‘까불지마’를 통해 오지명은 소싯적 수컷으로 정색하고 돌아가면서도, 기존 이미지를 교묘하게 덧붙이는 양면 전략을 구사한다. 이것이 바로 ‘까불지마’의 비밀이다.

시나리오 속 대사오지명이 실제로 하는 대사
“알았어. 빨리 해!”“알았어, 알았어. 인마, 마. 빨리해, 빨리해.”
“저 새끼 저렇게 그냥 보내야 돼?”“아이, 저 새끼, 저, 저거, 그냥… 보내야 되겠냐? 아이, 저, 아이, 저….”
“아, 삼복이 이 새끼 어떻게 죽이지?”“아이, 이, 삼복이 이 새끼, 의리도 없이, 어이, 어이, 으이, 으이.”
“너 진짜 약 올리는 거야, 인마.”“이거, 이거, 이거, 사람 무시할 거야? 아이, 진짜, 아이,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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