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팜’ ‘옴’은 있되 ‘파탈’이 없는 이유

  • 입력 2004년 12월 1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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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①
수천만 달러의 보석을 훔친 여성 로라(레베카 로민 스타모스)와 그녀의 행적을 쫓는 파파라치(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담은 ‘팜므 파탈’. 욕망에 굶주린 여성들과 떠돌이 조 테일러(이완 맥그리거)의 애정 행각을 그린 ‘영 아담’. 이 두 영화는 치명적인(파탈·Fatale) 매력으로 상대를 유혹해 종국엔 파멸로 몰고 가는 여자(Femme·팜)와 남자(Homme·옴)를 각각 다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영화엔 ‘팜’과 ‘옴’은 있되 정작 ‘파탈(치명적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팜 파탈은 창녀와 다르다

팜 파탈의 기본은 상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흡인력. 상대의 감정을 장악한 뒤 그 감정에 기생한다. 그러나 영화 ‘팜므 파탈’ 속 로라는 너무 성급한데다 직접적이다. 남자를 보자마자 알몸으로 돌진(dash)할 뿐. ‘유혹’은 타인을 자신의 무게중심으로 끌어들이려는 행동이고, ‘돌진’은 자신을 타인의 무게중심에다 내던지는 행위다. 다음은 그녀가 자신을 쫓는 파파라치와 첫 대면해 나누는 대화.

“어디 안 도망갈 거죠?”(파파라치) “(옷을 훌러덩 벗으며) 옷 홀랑 벗고 어딜 가겠어요.”(로라) “나를 유혹하는 거요?”(파파라치) “(그때서야 가슴 부위를 가리며) 내가요?”

사진②

이걸로도 모자라 로라는 끈 팬티 차림으로 당구대 위에 올라 엉덩이춤을 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대를 자신의 페이스대로 이끌고 가려는 어떤 육체적, 정신적 ‘게임’ 행위도 찾아볼 수 없다.

“불여우!”(남자) “왜 이래. 질투를 느낀 거야? 절차(애무를 뜻함)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로라)

똑같이 섹스를 밝히더라도, ‘헤픈 여자’는 그 자체가 ‘목적’인 반면 팜 파탈은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로라에게 섹스는 수단이 아닌 목표로 보인다.

로라의 얼굴을 분석해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홍준표 교수에 의하면 로라 역을 맡은 모델 출신 스타모스의 얼굴은 눈만 야릇하게 뜰 뿐 정서적 불안정성이 보이지 않는 ‘아주 착한’ 얼굴이다. 팜 파탈 형 여성에게는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일종의 정신질환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스타모스의 얼굴은 △눈썹이 약하고 △눈 부위가 덜 파였으며 △광대뼈와 턱 부위에 각이 덜 지고 △입술이 얇아 정서적으로 오히려 안정되고 건강해 보인다는 것.

● 옴 파탈은 난봉꾼과 다르다

사진③

영화 ‘영 아담’ 속 테일러 역시 ‘치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다수 여성과 섹스를 나누지만 상대를 파멸로 몰아넣을 의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이 뭐예요?”(테일러) “캐시.”(여자) “나랑 산책할까요. 캐시?”(테일러) “어디로요?”(여자) “(인적이 드문 곳을 가리키며) 저쪽.”(테일러)

그는 상대를 유혹하는 게 아니라 노골적으로 짝짓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가 구사하는 ‘유혹의 기술’이란 식탁 밑으로 털이 숭숭 난 제 다리를 집어넣어 여성의 다리에 비벼대는 소박한 수준인 것이다. 테일러는 ‘이상 성욕’의 수컷일 뿐. 여자가 결별을 선언하면 군말 없이 돌아서고 “난 결혼할 남자가 못돼”라며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쿨’한 남자 혹은 ‘자유인’에 가깝다.

결정적 한 가지. 진짜 옴 파탈이라면 이 영화처럼 섹스 직후 상대에게 “후회해?”하고 묻는 법이 결코 없다. 이 말은 남자가 자신을 속절없이 들켜버렸을 때 던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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