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04>높음(尊)과 낮음(卑)

  • 입력 2004년 9월 14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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尊은 갑골문에서 두 손으로 술독(酉·유)을 받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후 술독을 그린 酉가 酋(두목 추)로 두 손이 한 손(寸)으로 변하여 지금의 자형이 되었다. 아마도 조상신에게 술독(酉·酋)을 올리며 제사를 지내는 모습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드리다와 받들다는 뜻이, 다시 ‘높다’는 뜻이 나왔다.

이후 樽(술통 준)이나 준(술두루미 준)이 만들어졌는데 모두 술통을 뜻하며, 나무(木·목)로 만든 것은 樽, 도기(缶·부)로 만든 것은 준이라 구분하여 불렀다. 또 遵은 尊과 착(쉬엄쉬엄 갈 착)으로 구성되었는데, 높은 사람(尊)을 따른다(착)는 의미에서 遵守(준수)하다는 뜻이 생겼다.

卑의 자원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금문(오른쪽 그림)의 자형을 田(밭 전)과 복(복·칠 복)이 합쳐 구성된 것으로 보아, 밭(田)에서 일을 강제하는(복) 모습을 그렸으며 이 때문에 ‘시키다’의 뜻이 나왔고,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의미로부터 지위가 ‘낮다’는 뜻이 생긴 것으로 풀이한다.

하지만 금문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보다는 卑가 왼손(又의 반대 꼴)과 單(홑 단)의 아랫부분처럼 그물 모양의 사냥 도구로 구성되었다고 풀이하는 것, 즉 왼손으로 그물을 잡고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로 풀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고대의 여러 그림들을 보면 사냥대열에 언제나 말을 탄 지휘자가 있고 그 아래로 그물 등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심히 짐승들을 생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물을 든 사람은 말 탄 사람보다 지위가 낮고 힘든 일을 하기에 卑에 ‘낮음’과 일을 ‘시키다’는 의미가 담기게 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소전체에 들면서 卑는 甲(첫째 천간 갑)과 왼손의 결합으로 변하는데, 그물을 그린 부분이 갑옷을 의미하는 甲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자형의 유사성도 유사성이지만 사냥은 곧 전쟁이라는 고대인들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卑는 여러 파생글자들을 만드는데, 비는 사람(人)에게 그물로 사냥하는 것과 같이 수고스러운 일을 ‘시키다’는 뜻이며, 婢는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 지위가 낮은 여자(卑) 종을 말한다. 또 碑는 하관할 때 줄에 매어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卑)데 쓰는 돌(石)을 말하는데, 중국에서 碑는 원래 묘의 주인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관할 때 쓸 줄을 매도록 고안된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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