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異端’ 김기덕 감독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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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 국제영화제 중 두 곳에서 한 해에 잇달아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놀라운 성취다. 국내외 명문대를 졸업한 쟁쟁한 감독이 즐비한 작금의 한국영화계에서 그는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공장 근로자로 일한 ‘하류 인생’이다. 또 5억원 안팎의 저예산으로 2주일 안팎에 영화 한 편을 찍어내는 충무로의 ‘이단아(異端兒)’다.

▷명문대를 나왔거나 유학을 다녀온 감독 중에는 조로(早老)하는 이들이 많다. 동문, 인맥 등으로 얽혀 있는 평단과 언론의 과도한 헌사에 중독돼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십상인 까닭이다. 김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 시상식에서 깍듯한 존경을 표시했던 임권택 감독도 언젠가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집 자식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힘들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세계 영화사의 걸작들은 사실 주류(主流) 인생보다는 비주류(非主流) 인생에서 나온 경우가 더 많다.

▷올해 초 김 감독이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감독상을 받고 돌아왔을 때 감독협회가 주최한 귀국 축하연 분위기는 의외로 썰렁했다고 한다. 대부분 흘러간 감독과 영화인들이 참석했고, 잘나가는 감독이나 배우는 얼굴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솔직히 국내 주류 영화인들조차 김 감독을 ‘우리 식구’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주류로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온 김 감독은 오히려 그런 고립과 편견 때문에 두 차례나 세계의 공인을 받게 된 것이 아닐까.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예수가 고향인 갈릴리에 돌아와 지혜와 능력을 보였으나 ‘목수의 아들’ 운운하면서 믿으려 들지 않는 이들에게 한 말이다. 중국의 대선사(大禪師)인 마조(馬祖·709∼788) 스님도 마찬가지다. 선사가 고향으로 금의환향해 환대를 받았지만 어릴 적 마조를 기억하고 있는 한 노파는 “대단한 사람이 온 줄 알았더니 마씨 농기구집의 작은아들이구먼” 하며 시큰둥해 한다. 선사는 고향이 함부로 올 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김 감독이 고국에서 더는 고독한 존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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