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이탈리아에서 온 성장영화 2편

  • 입력 2004년 8월 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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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아이들의 세계와 추악한 어른들의 세계를 충격적으로 대비시킨 ‘아임 낫 스케어드’.-사진제공 시네파크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와 추악한 어른들의 세계를 충격적으로 대비시킨 ‘아임 낫 스케어드’.-사진제공 시네파크
■ ‘아임 낫 스케어드’

영화 ‘아임 낫 스케어드(I'm Not Scared)’는 ‘난 두렵지 않다’는 제목과 달리 관객들을 여러 번 두렵거나 놀라게 하는 작품이다.

아이들이 황금빛 밀밭 사이를 질주하며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폐가(廢家)까지 달리기 시합을 한다. 1등을 한 아이는 꼴찌로 들어온 여자 아이에게 벌로 은밀한 부위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긴장감과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가난한 시골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동심을 담은 전형적인 성장 영화일까?

하지만 영화는 10세의 미카엘(주세페 크리스티아노)이 폐가 근처에서 어두운 굴을 발견하면서 ‘무서운’ 반전을 시도한다. 이곳에는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소년 필리포(마티아 디 피에로)가 굶주림과 공포에 떨고 있다.

1992년 ‘지중해’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은 천진난만한 영화의 ‘얼굴’을 순식간에 미스터리와 인간의 추악함이 꿈틀거리는, 어두운 낯빛으로 바꿔버린다.

극중 상반된 이미지의 대비는 매우 효과적이다. 목가적인 황금빛 밀밭은 어두운 굴을 더욱 고통스러운 공간으로, 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삶에 찌든 어른들의 모습을 더욱 추레하게 만든다.

누군가에 의해 유괴된 필리포가 동갑내기 미카엘에게 던지는 말은 가슴을 찢는다.

“난 죽은 게 틀림없어.…살아 있으면 엄마가 날 이렇게 둘 리가 없어.”

영화는 이후에도 관객을 두세 번 더 놀라게 하고, 또 슬프게 만든다. 슬픈 것은 ‘넌 어려서 모른다’는 어른들의 궁색한 변명이다.

이 작품은 마주잡은 미카엘과 필리포의 손을 통해 그 고통스러운 공포를 이겨낸 힘이 무언인가를 보여준다. 두 아역배우는 600여명이 참가한 오디션에 선발됐다.

2003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 후보작. 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 ‘나에게 유일한’

사춘기의 성적 호기심과 부모세대와의 갈등을 청소년의 눈높이로 담아낸 영화 ‘나에게 유일한’.-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어디부터 만졌어?” “괜찮은 여자애 만나려면 도서관에 가야 해.” “몇 분 동안 했어?” “이놈의 처녀성 지긋지긋해. 사랑하는데 왜 기다려야해?” “난 더 이상 네가 친구로 안 보여.” “진짜 파시스트는 엄마 아빠에요.” “멈출 수가 없어!”

6일 서울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되는 이탈리아 영화 ‘나에게 유일한’의 핵심은 속사포와 같은 속도로, 그것도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같은 대사들이다. 대사의 속도는 성적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생각의 속도’, 바로 그대로다.(이런 좌충우돌 대사가 야단스러운 이탈리아어로 전해진다고 상상해 보라.)

총각 딱지 떼는 게 지상과제인 16세 실비오는 친구 마르티노의 애인이라 짝사랑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발렌티나에게 도둑 키스를 한다. 소문은 입 싼 10대들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진다. 마르티노는 실비오를 죽이겠다며 달려들고, 발렌티나는 소문의 진원지인 실비오를 외면한다. 실비오는 편하게 지내던 여자친구 클라우디아에게 심경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실비오를 정작 사랑해 온 건 클라우디아였다.

이 영화는 시끌벅적하지만 어느 순간 시간을 딱 정지시키거나 반대로 순간을 아주 길게 늘일 줄 안다. 유치한 만큼 솔직하고 가벼운 만큼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빨래가 널린 옥상에서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첫 섹스에 ‘성공’하는 실비오의 모습이 전하는 것은 소원성취(?)의 쾌감이 아니라, 아주 긴 성장의 터널에 이제 막 들어선 걱정스럽고도 유쾌한 청춘 그 자체다. 이런 진정성 있는 태도는 그저 ‘웃고 말자’며 10대의 성적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아메리칸 파이’ 류의 섹스코미디와 이 영화를 구별짓는다.

이탈리아의 신예감독 가브리엘레 무치노가 연출했으며, 감독의 친동생인 실비오 무치노가 실비오 역을 맡았다.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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