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사죄 끝내 못받고 가시다니…” 故 김순덕할머니 안장

  • 입력 2004년 7월 2일 19시 16분


코멘트
“형님, 먼저 가면 어떡합니까. 끝을 보고 가셔야지.”

2일 오전 5시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선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고 김순덕 할머니의 발인제가 열렸다.

▶본보 7월 1일자 A22면 참조

대구에서 올라온 군위안부 출신의 이용수 할머니(78)는 일본의 사죄를 끝내 보지 못하고 영면한 김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발인제가 끝나고 화장(火葬)을 한 뒤 오전 10시반경에는 그가 사망하기 전 12년 동안 생활해 온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족과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 나눔의 집 일본인 후원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나눔의 집 원장인 원행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역사 속의 또 한 분을 잃었다”고 말했다.

원행 스님은 미리 준비한 추모사의 첫 문장을 읽다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히다 “편안히 가십시오”라는 한마디로 추모사를 대신했다.

한국정신대연구소 이성순 소장 역시 “밤새 고민했는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며 “고생하셨다”는 말로 김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현 사무총장은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인 수요집회에 한번도 빠지지 않은 할머니가 수요일에 세상을 떠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유해는 나눔의 집 앞뜰에 있는 고 김옥주 문명금 할머니의 납골함 옆에 봉안됐다.

192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7세 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중국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군위안부 생활을 했다.

1992년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한 그는 ‘못다 핀 꽃’ ‘끌려감’ 등 20여점의 그림을 그려 군위안부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오다 지난달 30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광주(경기)=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김순덕 할머니 영전에 바치는 추모시▼

‘고된 걸음 쉬소서’ 중에서

김순덕 할머니 영전에 바치는 추모시

‘고된 걸음 쉬소서’ 중에서

팔십 평생 울음 우신 작은 가슴 떨림으로

고된 걸음 멈추시고 안온함 찾으실 때

당신 눈가 눈물 자욱 부디부디 거두시어

힘없던 민족의 딸 그 설움 묻으시고

당신 가슴 울린 땅 부강을 빌어주오

무너진 억장에 가슴 후빈 모진 날들

다시는 이 땅에 오지 않게 빌어주오

생전의 걸음대로 사뿐히 가오소서

생전의 미소대로 환하게 가오소서

가녀린 당신 육신 우리 이리 보내오나

강인했던 영혼만은 길이길이 기억하오

김석옥 소리꾼 시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