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서 ‘이순신 새로보기’ 잇따라

  • 입력 2004년 6월 24일 18시 41분


코멘트
만화 ‘불멸의 영웅 이순신’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갑옷과 캐릭터가 파격적이다. 이 옷은 SF와 전통 디자인을 퓨전한 것이다. 사진제공 웅진닷컴
만화 ‘불멸의 영웅 이순신’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갑옷과 캐릭터가 파격적이다. 이 옷은 SF와 전통 디자인을 퓨전한 것이다. 사진제공 웅진닷컴
성웅(聖雄) 이순신. 전란으로부터 나라를 구원한 그가 요괴를 퇴치하는 판타지의 주인공이 된다면? 큰 뜻을 갖고 있지 않는 한량이라면?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파격적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영웅 이순신’의 이미지를 벗어나 ‘이순신 새로 보기’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젊은이들이 국가권위의 상징인 태극기로 머리나 몸을 감싸는 발상의 전환을 했듯이,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이순신들이 나오고 있다.

성웅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이순신은 소설 ‘불멸’(김탁환·1998년)이나 ‘칼의 노래’(김훈·2003년)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이순신이라는 아이콘을 SF나 판타지 등 대중문화적 요소와 처음 결합한 것은 서울 광화문 앞의 이순신 동상이 ‘유쾌 상쾌 통쾌’라고 외치는 2001년 메가패스 광고였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메가패스 장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 파격 외모

만화 ‘불멸의 영웅 이순신’(원작 박종화·전 2권·웅진닷컴)은 장군이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를 다룬다. 이 작품 속의 장군은 수염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을 가졌으며 전통 갑옷을 변형한 SF 분위기의 파격적 의상을 입었다.

작가 노미영씨(28)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어린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러나 스토리가 실제 역사와 달라지지 않도록 고증에 충실해 인물의 성격을 영웅 형으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 파격 캐릭터

7월 크랭크인하는 박중훈 주연의 영화 ‘천군(天軍)’(감독 민준기)의 이순신은 무과시험에 떨어진 뒤 인삼 밀무역을 하는 한량이다. 원대한 포부도 없다. 우연히 과거로 온 현대의 남북한 군인들은 이를 보고 “우리가 알던 이순신이 아니다”며 이순신을 장군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을 시킨다. 이 영화의 제작사 싸이더스의 장보경 기획팀장은 “영웅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성장하며 만들어진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인물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했다”고 말했다.

○ 파격 세계

최근 1, 2권이 나온 만화 ‘대장군 이순신’(대원씨아이)은 일종의 퇴마물(退魔物)에 가깝다. 10대 이순신이 일본에 건너가 갖가지 요괴들을 물리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화 속에서 임진왜란은 이 요괴들이 주도한 것으로 묘사된다.

작가 서석근씨(31)는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판타지 차원으로 보인다”며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그릴 때는 역사적 사실과 판타지를 연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어떻게 봐야 하나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교육받은 텍스트도 재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 경우 대상이 유명할수록 효과가 극대화 된다”며 “특정 이미지로 고정됐던 상징들이 이젠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공적(公的) 영역인 방송에 비해 만화나 영화, 소설은 역사적 재해석이 용인될 수 있는 폭이 넓다”며 “판타지라도 고증을 거쳐 나름대로 개연성 있게 만들면 성공적인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순신에 대한 재해석이 반드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만화 ‘불멸의 영웅…’의 한 독자는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민족의 영웅이자 실존 인물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교육만화로 만들려면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역사적 권위의 해체가 가져올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