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야한여자-당찬여자]한국양성평등 장성자 원장

  • 입력 2004년 6월 24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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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1분, 여자는 3분.

개인차는 있겠지만 남자와 여자가 보통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며 변기를 사용하는 시간이다.

극장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의 여자 화장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그 앞에서 여자친구의 가방을 들고 기다리는 우직한 남자들을 많이 본다.

평균 하루 대 여섯 번 소변을 본다고 한다면 적어도 남자는 5분, 여자는 15분 정도를 변기에 머문다. 특히 여자들은 화장을 고치거나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화장실 이용이 더 빈번하고,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를 토대로 공공건물의 여자 화장실 부족 문제를 지적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 있다.

한국양성평등 교육진흥원의 장성자 원장이다. 건물을 지을 때 사용자의 성별 구성이나 남녀의 생리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자칫 편협하고 신경질적으로 비칠 수 있는 주장이지만 그는 밝고 가벼운 논리로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맘씨 좋게 생긴 넉넉함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더욱 힘을 발휘한다.

그는 여성이 겪는 불평등을 첫 출근하는 여성이 정장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육교를 오르내리는 것에 비유한다. 육교의 계단은 바지를 입은 남성의 보폭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또 남성이 겪는 불평등은 여성용 삼각팬티를 입은 남성의 불편함에 견준다. 남녀 역할분담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가사나 육아까지 공유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남성에게는 익숙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양성 평등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있는 사랑이다.

그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철두철미한 전투적 관계를 경멸한다. 서로 생존을 위해 이용하고, 서로에게 달려들며 추락해 가는 남녀의 모습은 폐허의 감정만을 남길 뿐이다.

장성자는 사랑의 신봉자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는 그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이 전하는 신뢰와 존중을 더 중시한다. 수십 가지 감정으로 묘사되는 이야기가 그의 섬세한 예민함과 닮았다.

그는 젊은 시절 첫 월급을 그림 한 점을 사는 데 모두 털어 넣었다고 한다. 그만큼 예술가의 열정을 사랑한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그에게서 카마수트라의 관능이 느껴지는 것은 아름다운 삶의 원천이 사랑임을 잊지 않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삶의 충만함을 위하여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그런 열정에서 나온다. 성에 대한 편견을 깨고 평등함이 이 세상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날개옷을 빼앗겨 아이 셋을 낳고 원하지도 않았던 삶을 살았던 선녀, 아이 셋만 낳으면 선녀가 도망가지 않을 거라 믿었던 어리석은 나무꾼. 인간은 결코 욕망이나 집착으로 구속될 수 없다.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용기와 지혜가 발휘되는 것이다.

장성자, 그의 공중화장실에 관한 끈질긴 노력으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다. 이제 화장실 앞에서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남자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으로 추억될 날을 기대해 보자.

양성평등은 거창한 구호나 정책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흐름은 작은 것부터 변하고 시작된다. 편안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안전하게 거리를 다니며 마음 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만두사태에서 보듯이 먹을거리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떤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양성평등의 문제를 가장 가깝고도 절실한 곳에서 풀어낸 그의 노력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보석디자이너 패션 칼럼니스트 button@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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