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소지에/정신건강이 더 중요한데…

  • 입력 2004년 6월 1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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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5년 가까이 살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한국인들의 건강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다. 음식 스포츠 건강보조제에 이르기까지 건강 관련 산업은 불황을 모르는 듯하다. 20년 이상 제약업계에서 근무하다 보니 한국인들의 건강 관리 노력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

나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 뒤 사우나를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우나가 예전만큼 붐비지 않는다. 함께 사우나에 간 한국인 친구가 반신욕(半身浴) 열풍 때문이라고 귀띔해 줬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반신욕 효능이 소개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사우나보다 집에서 반신욕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많은 한국인 친구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꼬박꼬박 보약을 챙겨 먹는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에 대한 TV 저녁뉴스가 나온 다음 날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그 음식의 효능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벌어진다. 내가 근무하는 제약회사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의료 강좌가 열리는 날이면 최신 건강상식 정보를 습득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건강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달리 정신적인 측면은 너무 소홀하게 다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기 불황, 취업난, 과잉 교육열, 외모지상주의 등 한국은 사회적 압력과 스트레스가 많은 나라다. 피곤에 지친 정신건강을 적절히 돌보지 않는 한 신체 건강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웰빙’ 열풍만 해도 그렇다. 4, 5년 전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웰빙 문화는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 웰빙의 의미는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인 여유 있는 사람들의 문화 여가 양식을 이르는 말로 자주 쓰이는 듯하다. 정신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의 참뜻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물질주의에 치우치게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프랑스는 ‘웰빙’의 원조격인 나라 중의 하나다. 프랑스인들의 웰빙 문화를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분야는 음식이다.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맛보다는 원재료의 신선함을 살리는 조리 방식을 택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건강하고 품격 있는 삶은 올바로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재료의 신선도와 영양을 살린 음식을 통해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까지 유지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진정한 웰빙은 자신이 추구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운동이나 명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일상의 문제에서부터, 내 삶의 방향과 목표는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것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럴 때 이미 기품 있는 ‘웰빙’족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것이 아닐까.

티에리 소지에 사노피-신데라보 코리아 사장

약력 : 195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으며 1984년 파리 제11대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다국적 제약회사 사노피-신데라보 코리아 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롤링스톤스 공연을 보러 일본에 다녀올 정도의 록 음악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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