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도 성전도 간판도 없는…서울 충정로 산울교회

  • 입력 2004년 4월 22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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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교회는 별도의 건물 없이 빌딩 강당을 빌려 예배를 올린다(위). 한 달에 세 번 설교를 맡은 소설가 조성기씨(아래)도 담임 목사가 아니라 전도사로서 평신도와 같이 교회를 운영한다. 조씨는 “신도들이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산울교회는 별도의 건물 없이 빌딩 강당을 빌려 예배를 올린다(위). 한 달에 세 번 설교를 맡은 소설가 조성기씨(아래)도 담임 목사가 아니라 전도사로서 평신도와 같이 교회를 운영한다. 조씨는 “신도들이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산울교회는 담임목사 없이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된다. 굳이 교회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을 들자면 한 달에 세 번 설교하고 인터넷 홈페이지(www.sanul.or.kr)를 관리하는 조성기씨. 직함도 목사가 아니라 전도사다.

조씨는 주제에 맞춰 성경을 인용하는 방식 대신 마가복음을 한 대목씩 강의하는 식으로 설교한다. 이날 설교는 마가복음 7장 31∼37절의 ‘에바다’. 이 말은 예수 활동 당시 이스라엘에서 통용된 아람어로 ‘열려라’란 뜻. 예수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병자를 고쳤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조씨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베풀기가 아니라 그 고통받는 사람이 되어 함께 탄식하는 뜻이라고 설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 같은 방식으로 누가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등의 설교를 마쳤다.

조씨는 “성경의 한 대목만 보는 것으로는 전체 맥락을 놓치기 쉽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은 평신도가 설교한다. 성경 속에서 은혜를 받은 말씀을 다른 신자들과 함께 나누는 설교를 한다.

헌금도 ‘감사와 나눔의 연보(捐補)’라고 해서 내고 싶은 만큼만 내도록 한다. 건물, 담임목사가 없으니 교회 관리비도 거의 필요 없다. 헌금은 선교와 개척교회 지원, 장학금, 봉사활동 지원, 불우이웃돕기에 대부분 사용된다. 조씨는 “교회개혁 같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개인적인 적용과 실천을 화두로 삼는 교회”라고 말했다.

산울교회는 또 흩어지는 교회를 내세운다. 이곳 시스템을 익힌 뒤 교회개척에 나선 전도사와 평신도가 5명이다. 최근에는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 회장이었던 대구가톨릭대 전강수 교수(집사)가 쥬빌리교회라는 평신도사역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1시간의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은 장년 청년 중고등 초등부로 나눠 분반활동을 한다. 특히 중고등부 활동을 지도하는 사람은 ‘주님의 교회’ 담임을 지냈던 이재철 목사다. 그는 98년 주님의 교회 담임에서 물러난 뒤 스위스 제네바의 작은 한인교회 목회를 하러 떠났다가 2001년 귀국해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이 시간에는 설교에서 느낀 점들을 나누고 봉사계획을 짜며 문화활동을 하기도 한다.

두 자녀와 함께 산울교회를 다니는 교인 양기영씨는 “교회의 방침도 좋고 아이들이 중고등부 모임을 좋아해 인천에서 이곳까지 온다”고 말했다.

예배가 끝날 무렵, 신자들이 함께 로마서 15장 13절을 외우며 축도를 대신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없는 것이 많은 교회, 그래서 더 꽉 차 보이는 교회였다.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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