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詩의 핵심은 혁명성”…강대석 교수 김남주 평전펴내

  • 입력 2004년 2월 3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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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나의 칼 나의 피’ 중)

감옥 창살을 넘어 온 시인 김남주(1946∼1994)의 노래는 1980년대 독재정권 아래서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던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그의 10주기(13일)를 맞아 철학자 강대석 교수(61·대구가톨릭대)가 그의 문학과 사상을 되짚어 사후 첫 평전인 ‘김남주 평전’(한얼미디어)을 펴냈다.

전남 해남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남주는 79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돼 15년형을 받고 1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뒤 5년을 자유롭게 살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 교수는 그의 창작과 삶을 관철한 핵심으로 ‘혁명성’에 방점을 찍었다. 김지하 황석영 등 선배 문인들의 저항성을 이으면서도 김남주 문학을 특징짓는 것은 바로 그의 시와 생활에 짙게 깔린 ‘계급의식’이라는 것.

김남주에게 시는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하는 문학적 수단’이었으며, 시인은 ‘싸우는 사람’이어야 했다. 감옥에서도 날카롭게 다듬은 칫솔로 우유 갑에 시를 꾹꾹 눌러 써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투쟁을 계속했다.

“그들 자본가에게서 인간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악마에게서 선의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옥중연서’ 중)이라고 외쳤던 김남주의 격렬한 시들은 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해 저자인 강 교수는 ‘나는 비평가가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서 시를 쓴다’고 말했던 김 시인의 창작관을 이유로 꼽았다. “김남주는 뺑뺑 돌리거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법 없이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

그런 그도 86년 광주교도소에서 전주교도소로 이감되면서 ‘이 가을의 나는’이라는 애절한 시를 쓰기도 했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13, 14일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하는 김남주 시인의 10주기 추모제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가 전남 해남의 문예회관과 생가, 그리고 광주 5·18기념문화관 등에서 열린다. 02-313-1486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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