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나의해]'태극기 휘날리며' 개봉앞둔 강제규 감독

  • 입력 2004년 1월 5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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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로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그는 147억7000만원이라는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세계 시장을 두드린다. -김미옥기자
‘쉬리’로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그는 147억7000만원이라는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세계 시장을 두드린다. -김미옥기자
1999년 ‘쉬리’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었던 강제규 감독(42). 5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쉬리의 강 감독’으로 불린다. 한국 영화사에서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취화선’)이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국제적 공인이었다면 ‘쉬리’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쉬리’는 당시 한국 영화사상 최다관객 기록(전국 597만명)을 세운 데 이어 일본 흥행성공으로 한국 영화를 국제무대에서 ‘팔리는 상품’으로 만든 것.

2004년 이제 그가 듣고 싶은 호칭은 ‘태극기 휘날리며’(2월 6일 개봉 예정)의 강 감독이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쉬리’ 이후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첫 질문에 그는 예상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쉬리’ 차기작으로 SF 영화와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2001년 8월 두 조감독이 TV에서 6·25특집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 테이프를 들고 왔어요. 내용은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던 늙은 아내가 50년 만에 남편의 유해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었죠.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그동안 본 어떤 전쟁영화보다 더 큰 울림을 줬습니다. 이것저것 다 밀어두고 ‘태극기 휘날리며’에 매달렸죠.”

‘태극기…’의 탄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6·25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 블록버스터, 순수 제작비 147억7000만원, 톱스타 장동건과 원빈…. 일본에서도 6월 ‘유니버설 저팬’이 배급을 확정하는 등 벌써 국제무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돈을 너무 많이 들인 것 아닌가?”라는 두 번째 질문에서도 먼저 돌아온 것은 웃음이었다.

“처음엔 100억원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쉬리’가 23억원 정도였고 인건비가 3, 4배 뛴 것을 감안했죠. 그러나 예상했던 국방부 협찬이 틀어지면서 제작비가 상승했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700만명대의 관객이 극장에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규모. 그는 “기획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했다”며 “밖에서 얼마나 큰 파이를 가져오느냐, 태극기가 어디까지 얼마나 세게 휘날리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태극기…’가 할리우드의 전쟁영화와는 다른 색깔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6·25전쟁으로 숱한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정작 우리에게는 막연한 흑백 기록 필름처럼 남아 있어요. 내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누가 잘 했고 못 했고’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으로 내몰린 진태(장동건) 진석(원빈) 형제를 통해 3년여의 시간이 우리 민족에게 무엇을 남겼느냐 하는 겁니다.”

지난해 12월 23일 그는 생일을 맞았다. 가족이 영화 편집실을 찾아왔지만 그는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작업해야 했다.

“만들고 도전하고, 그게 내 길이죠.”(웃음)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감독 제작노트중에서 ▼

▽2002년 2월=우연히 원빈을 만났다. ‘필(feel·느낌)’이 ‘파악’ 꽂혔다. 무조건 같이 하기로 했다. 총명하고 의리 있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19세 소년.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진석이란 인물이 원빈을 보자 구체화된다.

▽2002년 4월=(집념이 강하면서도 엄마와 동생에게 헌신적인) 진태역은 어떤 배우가 좋을까. 유오성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 한석규 장동건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다. 결론은 장동건. 장동건과 원빈, 실제 둘을 세워놓고 보니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굿 캐스팅!

▽2002년 5월=‘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제목을 꺼내자마자 연출부원들이 “감독님 극우세요?”라고 묻는다. ‘쉬리’ 때는 “이러다 영원히 쉬리∼”라고 했다. “자식들, 싫으면 대안을 내놔봐!”

▽2002년 6월=예산을 최대 100억원으로 잡았다.

▽2002년 11월=크랭크인이 다가온다니 설레고 두렵고 행복하고…. 몇 년 만에 잡아보는 메가폰. 나 하나를 바라보는 150여명의 스태프와 수백명의 배우들. 모든 이들을 300% 믿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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