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3년 링컨, 게티즈버그 연설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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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에서 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를 구하는 게 아니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도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오.”

‘노예해방의 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믿어지는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는 링컨. 그의 존재를 통해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은 동의어(同意語)로 각인되었고 그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민주주의 이념의 교본, 아니 기도문으로 전 세계에 암송되고 있다.

2분 만에 끝나 사진기자들이 촬영을 놓쳤다는 게티즈버그 연설은 곧잘 예수의 산상수훈에 비교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수사(修辭)는 중언부언에 불과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불멸성을 획득하였다.

그런데 링컨은 정녕 노예 해방론자였는가.

‘위인(偉人) 링컨’의 비밀을 캐기 위해 그의 업적과 순교를 기리는 신화와 전설의 숲을 샅샅이 헤집었던 미 로욜라대의 토머스 딜로렌조 교수. 그는 다시 고쳐 묻는다.

남북전쟁은 불가피했는가. 노예해방은 당시 유럽에서 국가 보상을 통해 평화롭게 종식되고 있었음에도 왜 미국에서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야 했던가.

링컨은 영국과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했다. 그러나 남부의 독립적인 주들은 저항했다. 그는 보호무역과 중상주의 정책을 펴고자 했다. 그러나 남부는 무제한적인 자유무역을 요구했고 마침내 연방탈퇴를 선언한다. 노예해방은 남부를 치기 위한 명분일 뿐이었다.

그게 남북전쟁의 시발이었다는 것.

딜로렌조 교수의 ‘링컨 뒤집기’는 분명 충격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링컨’이 진실의 전부일 수 없듯이 거꾸로 보는 링컨 역시 온전한 실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링컨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현실주의적 정치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정치적 유산은 미국의 역대 공화당 정권을 통해 제국주의적 패권 추구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것.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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