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링에서 지다…1982년 복서 김득구 사망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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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구야, 득구야. 안 듣기나(들리나)….”

1982년 11월 18일 오전 7시. 비운의 복서 김득구(당시 23세)의 생명을 지탱하던 산소호흡기가 치워졌다. 레이 맨시니와 사투 끝에 링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지 99시간 만이었다.

“내가 살아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자신의 시신이 담길 관을 짜놓고 링에 선 도전자. 그리고 그의 눈빛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아야 했던 챔피언. 그들은 공이 울리자마자 폭풍처럼 맞붙었고 피 튀기는 난타전 속에서 상대방과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를 넘봐야 했다.

김은 스트레이트가 주무기였으나 외곽으로 돌지 않고 챔피언과 중앙에서 맞붙었다. 경기는 처음부터 치명적이었다.

김은 당초 전적에서 열세가 확연했다. 24승1패의 맨시니는 떠오르는 ‘백인 복싱 영웅’이었고 16승1무1패의 김은 동양의 무명일 뿐이었다. 현지의 도박사들은 8 대 2로 맨시니의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막상 공이 울리자 김은 무섭게 맨시니를 몰아쳤고 그의 불같은 투혼에 장내는 한순간 숙연해졌다. 초반 한때 맨시니는 그로기까지 몰렸으나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김의 스텝은 차츰 무뎌져 갔다. 그리고 운명의 14라운드. 김은 맨시니의 오른쪽 스트레이트를 맞고 넘어졌다. 그는 로프를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으나 카운트아웃이 선언된 뒤였다. 그는 맥이 풀린 듯 다시 바닥에 쓰러졌고 끝내 의식을 잃었다.

피에 굶주린 미국의 관중에게도 이 경기는 충격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인간은 고깃덩어리가 아니고, 프로권투는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복싱 경기의 잔혹성을 비난하는 사설을 실었다.

김의 죽음으로 사양길을 걷던 국내 프로복싱은 급속히 침체 국면을 맞게 된다. 그것은 70년대, 그 궁핍한 시대의 영웅 ‘헝그리 복서’가 무대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때마침 출범한 프로야구가 팬들의 열광 속에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고 있었으니 이렇게 해서 한 시대는 가고, 또 한 시대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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