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채운 '빈자리'…소설가 함정임 '내 이름은 나폴레옹' 내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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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함정임씨(39)가 이번주 첫 동화집 ‘내 이름은 나폴레옹’(이가서)을 펴낸다. 네 살 때 아버지(소설가 김소진)를 여읜 아들 태형(10)을 위해, 또 함씨 자신을 위해 쓴 동화다.

‘내 이름은…’은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가 무대. 주인공인 아홉 살짜리 한국 소년 소형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뒤 엄마와 단둘이 산다. 파리에서 소형은 엄마가 없는 중국계 프랑스 소년 피에르, 일본계 영국 소년 스테판, 엄마도 아빠도 없는 프랑스 여자아이 카미유와 친구가 된다. 세 친구를 통해 소형은 세상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가족이 있다는 것,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을 함께 배우며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란다.

20일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작가의 집을 찾았다. 1997년 남편 김소진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함씨는 한동안 ‘불가항력의 힘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세계’를 아들과 함께 살아내야 했다.

집 앞 호수공원에 나온 소설가 함정임씨. 그는 "한국에서는 부모가 없으면 단순히 '고아'라고 못 박아 버리지만 파리 사람들은 1인 가족으로 보더라"고 말했다. -고양=이훈구기자

“신도시에 사는 20, 30대 젊은 부부들의 가족이기주의가 강했어요. 소위 결손가정, 한 부모 가정에 대해 꽤나 인색하더군요. 살아가는 일이 가시밭길 같고 숨쉬기조차 불편할 때가 많았죠. 하지만 아이와 내게 주어진 이 과제는 우리 스스로 풀지 않으면 안되었어요.”

남편이 떠난 후 함씨는 94년부터 살아 온 일산신도시와 언니가 있는 경북 경주시, 그리고 ‘마음의 고향’인 파리 등 ‘살 만한 곳’들을 찾아 여기저기 샅샅이 뒤졌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색하는 시기”였단다. 동화에 등장하는 파리의 아파트는 그 ‘모색’의 시기였던 99년 함씨와 아들 태형이 몇 달 동안 지냈던 곳.

“파리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만났어요. 나와 아이 모두 다른 세상과 생활을 보았죠. 한편으로만 보자면 결핍이고 아픔이지만, 열어놓고 보면 보편적인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동화책 맨 앞 ‘작가의 말’에서 함씨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어 한쪽 가슴이 허전한 친구,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도 없는 구석에 혼자 다녀오는 어린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동화 속 엄마 정임은 아들 소형에게 이야기한다.

“잘 변하기 위해서는 늘 마음을 열어놓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해.” “당당함은 마음을 열었을 때 생기는 거란다. 그때는 아무리 변해도 변했다고 할 수 없는 어떤 중심이 생기거든.”

엄마는 아이의 몸이 한국 땅 어디에 있든지 생각은 세계와 자유롭게 소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함씨는 ‘작은 인간’ 태형에게 자주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준다. 열린 마음으로 선택하되 그 결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번 동화의 주인공 이름도 태형이가 정했어요. 아빠가 96년에 발표한 동화 ‘열한 살의 푸른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아들 이름과 같은 태형이거든요. 그래서 ‘엄마도 첫 동화라 너의 이름을 쓰고 싶은데 이미 아빠 책에 있구나, 어떻게 할까’ 했더니 ‘그럼, 소형이로 해요’라고 아이가 제안했어요.”

김소진의 동화 ‘열한 살의…’도 표지 등이 새 단장돼 ‘문학동네’에서 11월 중 재출간될 예정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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