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엽/이창동 장관의 'IPI 깎아내리기'

  • 입력 2003년 9월 1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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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이 16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의원들과 공방을 벌였다. 비판언론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탄압 중지를 촉구하는 국제언론인협회(IPI)의 결의문 채택과 문화부 산하 문화예술단체장에 대부분 진보계열 인사를 임명한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이 장관은 IPI의 결의문에 대해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일부 한국 언론인들의 시각이 반영돼 그런 결의문이 나온 것은 국가 망신”이라고 맞섰다. 예술단체장 편향 인사에 대해서도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분들”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 같은 이 장관의 답변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는 그동안 언론의 지적에 대해 “그렇지 않다”며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블레임 게임(Blame Game)’을 해 왔다.

그러나 IPI는 52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언론단체로 100여개국의 언론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여기서 내는 연례보고서는 각국 언론 상황의 척도이기도 하다. 특히 IPI는 ‘한국 결의문’을 채택하던 15일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있는 반(反)테러법의 세계적인 확산, 짐바브웨 정부의 비판언론 탄압을 우려하는 결의문도 함께 채택했다. 이런 단체의 결의문이 망신스럽다고 한 이 장관의 말을 미국이나 짐바브웨 정부가 귀담아들을까 걱정스럽다.

이 장관은 이번에 뽑힌 예술단체장들을 누구는 어디 출신이고 누구는 어디 출신이라며 편 가르기를 하면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도 말했다. 자신도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출신으로 분류되지만 제대로 활동한 적은 없으므로 편 가르기는 악의가 담긴 왜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진보 계열의 문화인들 중에는 “그 자리만큼은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문화부 장관 자리를 두고도 비슷한 말이 오갔다. 과연 이 장관이 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단 말인가.

이 장관 취임 이후 예술단체장에 진보계열 인사들이 많이 진출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국립국악원장에 김윤수 민예총 이사장과 김철호 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 이사장이 각각 임명되자 문화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 장관은 자신의 말에 설득력을 얻으려면 정치 욕심을 내는 ‘문화 운동꾼’부터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장관은 문화부 국실장 회의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이 없으면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그런 장관이 언론과 국회에서는 다른 의견에 귀를 막은 듯한 ‘전사(戰士)’로 바뀐다.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문화부 장관까지 그런 이미지로 비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 망신’이다.

허엽 문화부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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