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16>籌 備(주비)

  • 입력 2003년 9월 16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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籌 備(주비)

籌-산가지 주 備-갖출 비 壺-배부른 병 호

策-꽤할 책 辦-힘들일 판 深-깊을 심

몇 년 전 신문지상에 ‘籌備’라는 용어가 사용됐을 때 많은 독자들이 ‘準備’(준비)의 誤記(오기)가 아니냐고 문의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漢字(한자)로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이처럼 혼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단어는 漢字를 倂記(병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籌備와 準備는 漢字가 다른 만큼 그 뜻도 엄연히 다르다.

籌는 竹(대나무 죽)과 壽(목숨 수)의 결합으로 ‘사람의 수명을 알려주는 대나무’다. 옛날 중국에서는 거북이 배 껍질을 불에 달군 송곳으로 뚫어 그 때 나타나는 금으로 吉凶(길흉)을 점쳤다. 이 때의 ‘금’을 뜻하는 글자가 ‘卜’으로 흔히 占卜(점복)이라고도 한다. 사실 占자도 그 구성을 보면 ‘卜을 입으로(口) 설명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거북이를 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또 번거로웠으므로 후에 오면 풀이나 대나무를 사용하게 됐는데 각기 蓍草(시초)와 籌라고 했다. 그러니까 籌는 인간의 수명(壽)을 점쳤던 대나무 가지라는 뜻이 된다. 후에 籌가 셈을 하는 데에도 사용되어 ‘산 가지’라고도 불렀는데 지금도 점쟁이들이 算筒(산통)에 산 가지를 넣어 점을 치곤 한다. 또 籌는 오락기구이기도 했다. 옛날 선비들의 놀이에 投壺(투호)라는 것이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 꽃병 모양의 投壺甁(투호병)을 놓고 길다란 대쪽(籌)을 던져 넣는 놀이다.

점이든 投壺놀이든 ‘헤아리는 것’은 같다. 그래서 籌는 ‘헤아리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籌策(주책·요모조모 생각해 본 끝에 나온 꾀나 책략), 籌辦(주판·헤아려 처리함)이 있다.

備는 인과 ‘-’(갖출 비)의 결합, ‘-’는 木架(목가·나무틀)에 화살이나 兵器(병기)가 꽂혀 있는 모습으로 武器庫(무기고)를 뜻하며 인은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곧 備는 사람이 무기고를 지키고 있는 모습으로 적의 침략이나 약탈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備는 ‘준비’ ‘대비’ ‘갖추다’는 뜻을 갖게 됐다. 備忘錄(비망록), 備品(비품), 警備(경비)가 있다.

곧 籌備는 ‘요모조모 꾀하여 갖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深思熟考(심사숙고)가 개입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어떤 일을 꾀함에 있어 깊은 計劃(계획)과 論議(논의)를 하면서 準備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단순히 어떤 것을 미리 마련해 갖춰 놓는다는 뜻의 準備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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