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신문만화에 ‘비판’ 빠지면 포스터”

  • 입력 2003년 9월 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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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사회를 비판하지 않으면 시사만화가 아니다. 칭찬만 하면 그건 시사만화가 아니라 포스터다”라고 말하는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 화백(왼쪽)과 ‘고바우’의 김성환 화백. -김미옥기자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지 않으면 시사만화가 아니다. 칭찬만 하면 그건 시사만화가 아니라 포스터다”라고 말하는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 화백(왼쪽)과 ‘고바우’의 김성환 화백. -김미옥기자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의 시사만화가들이 최근 정부나 각종 사회단체로부터 유무형의 압력을 받고 있다.

‘노사모’ 출신들이 주축이 돼 만든 ‘국민의 힘’ 회원들은 얼마 전 한 신문사를 찾아가 만평에 항의했으며, 현 정부 출범 전 정권인수위는 브리핑자료를 통해 동아일보 시사만화 ‘나대로 선생’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 없이 노무현 당선자측을 공격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국시사만화가회 이홍우 회장(54·동아일보 국장급 편집위원)과 원로 시사만화가 김성환씨(72)의 대담을 통해 정치 사회적 비리와 실정을 촌철살인 식으로 풍자하는 시사만화가들의 애환과 고민을 들어봤다. 이 화백은 1980년 11월부터 23년간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을 연재해오고 있으며, 김 화백은 1955∼2000년 동아, 조선, 문화일보에서 ‘고바우’를 그렸다.

▽이홍우=매일 ‘나대로 선생’을 내면서 단두대에 올라가는 심정이다.

▽김성환=시사만화는 가상의 세계다. 이에 대한 항의는 사회적 아량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풍자가 없는 만화는 독자가 먼저 용서하지 않는다.

▽이=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는 시사만화에서 말이나 개로 비유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시사만화가들을 미워했다. 하지만 실각 이후 자신을 풍자한 내용이 하나도 나오지 않자 “시사만화에 등장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신의 회고록에 썼다. 노무현 대통령이 풍자되는 것은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요즘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일부 시사만평에는 반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김=자유당 시절에는 조폭들이 날뛰고 정치 테러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시사만화는 더욱 강성이었다. 정보기관에서 수모를 겪은 시사만화가들이 적지 않았고, 나도 권총으로 위협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난 그렸다.

▽이=“때려 죽인다” “X자식” “몸조심하라” 등 전화폭력과 협박도 잦다. 일부 신문과 인터넷 매체로부터 집단 매도당하는 현실도 서글프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또 다른 시사만화가들로부터도 비난받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일부 시사만화가들이 다른 작가의 만화를 공개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이를 일부 매체들이 보도해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김=정권과 사회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시사만화가 아니다. 시사만화가 단점만 건드린다고 비난하는 것은 소아병적 사고다. ‘잘했다’고만 하면 시사만화가 아니라 포스터다.

▽이=심지어 “왜 대통령 얼굴을 고약하게 그렸느냐”며 욕설을 퍼붓는 항의도 있다. 이건 ‘미디어 테러’다. 주로 노 대통령을 풍자할 때 “왜 대통령만 비난하느냐”는 항의전화가 집중적으로 온다. 화물연대 파업 등 다른 이익단체들의 행위도 풍자하는데 왜 대통령을 소재로 삼을 때만 항의전화가 집중되는지.

▽김=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시원하다” “잘 그렸다”는 독자전화가 하루 4, 5통만 와도 대단한 반향이다. 불만이 있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이들은 항의하면 심리적인 공포와 압박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다. 만화는 더 매서워지고 만화가는 더 강해진다. 권력은 어차피 비판의 대상이다.

▽이=기자들은 물론 젊은 대학생들을 자주 만나 세상 이야기를 듣고 메모한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하는 광고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한편 한국시사만화가회는 27일∼다음달 8일 서울 중구 예장동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한국시사만화작가 초대전’을 연다. 이 전시에는 ‘고바우’의 김성환 화백을 비롯해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 조선일보 ‘조선만평’의 신경무, 중앙일보 ‘중앙만평’의 김상택, 한국경제 ‘소오갈 선생’의 안백룡, 경북일보 ‘미스터 왜가리’의 안기태씨 등 회원 23명의 작품이 선보인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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