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의 북한답사기]<상>'청춘 도시' 평양, 산중의 산 묘향산

  • 입력 2003년 9월 3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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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북한 관광시대가 다가오고 있다.15일 평화항공여행사측이 모객한남측 관광단 130명이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국적기 편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과 묘향산을 관광한다. ‘연내 2000명’을 목표로 시작된 평양 및 백두산 관광에 앞서 그 현장을 미리 취재한 본보 조성하 기자의 답사기를 두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인천 공항을 이륙한 지 29분후. 창밖 3시 방향으로 백령도가 보인다. 그 옆으로 보이는 것은 장산곶 마루. 북위 38도선을 막 통과하고 있다. 이륙 후 55분 만에 평양행 아시아나항공 편은 순안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들판에서 일하던 주민들이 낯선 항공기의 도착을 지켜본다. 트랩 카의 계단을 내려와 밟은 평양 땅. 올려다본 파란 가을하늘은 맑고도 높다.

●스위스서도 묘향산까지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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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은 한적했다. 구소련 제 투볼레프 기종의 고려 항공 여객기 2대 뿐. 뜨고 내리는 항공기도 없다. ‘평양 항공 역’ 대합실. 한복 차림의 판매원이 ‘무관세 매대’에서 양주와 북한 담배를 팔고 있다. 최고급이라는 ‘루이13세’도 보인다(930달러). 가격은 모두 미화.

샹들리에 늘어뜨린 실내 한쪽 벽에 김일성 주석(왼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다른 벽에는 항공편의 출발 시각이 쓰인 안내판이 있다. 행선지는 ‘원산’ ‘대련’(중국) 등등.

버스에 올라 묘향산으로 향했다. 평양에서 북방의 묘향산까지는 160km . 버스는 왕복 4차선의 고속도로를 달려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가을걷이 황금 들판. 어릴 적 외가댁에 갈 때 보았던 경부선 철도변의 모습처럼 고즈넉하다. 청천강 흐르는 들판을 지나 고색창연한 한옥이 지붕을 맞댄 작은 도시를 지났다. 향산읍이다. 묘향산의 향산호텔까지는 계곡으로 난 도로가 5.5km나 이어진다.

묘향산 보현사

피라미드 모양의 향산호텔(15층). 계곡 안이어서 묘향산의 산세는 보이지 않는다. 평양에서 가까운 관광지인지라 주차장에는 관광객 수송용 버스가 10여대나 서 있다. 관광객은 대부분 북한 주민. 간혹 외국인(중국 일본 유럽)도 보인다. 배낭 맨 스위스 대학생은 베를린(독일)에서 고려항공편으로 왔다고 했다.

개울(묘향천)은 그냥 들이켜도 좋을 만큼 맑고 깨끗했다. 금강산과 마찬가지로 묘향산 역시 바위에 새긴 선전 구호만 제외하면 본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듯 했다. 고려 때 지은 고찰 보현사는 호텔 근처에 있다. 승복에 가사를 걸친 주지스님이 나와 남쪽 손님을 맞는다. 서산 대사(1520∼1604)가 머물렀다던 이 곳. 해인사처럼 고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법보사찰이다.

묘향산 속살을 더듬기 위해 계곡을 찾았다. 만폭동(萬瀑洞)이다. 이름 그대로 온통 바위로 이뤄진 계곡은 도처에 폭포다. 폭포를 감상하면서 오르는 산 길. 어떤 곳은 바위를 파내어 계단처럼 길을 냈다. 점입가경. 아무리 가팔라도 힘든 줄 모르고 산을 오르게 하는 힘의 원천은 바로 그 것이다. 이튿날 찾은 평양. 주체사상탑(높이 탑신 10m 횃불 20m)에 오르니 평양 시내가 막힘없이 보인다.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이고 대동강에 의해 동서로 나뉜 이 도시. ‘단군 3000년부터 5000년 역사가 숨쉬는 곳(북한 측 주장)’이라는 설명이 무색하다. 고풍스런 유적이나 건물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두 잿빛의 콘크리트 건물과 ‘살림집’(고층 아파트) 뿐이다.


●"평양개선문 파리보다 더 큽네다"

북측의 설명은 이랬다. 6·25때 폭탄이 42만8000개나 떨어져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됐기 때문이라고. 콘크리트 건물은 모두 복구 과정에서 들어선 것이란다. 그래서 평양을 ‘청춘 도시’라고 부른다는 얘기. 눈에 띄는 대형 건물은 탑 정면 대동강 건너(서편) 강변의 김일성광장과 잇닿은 인민 대학습당(도서관), 그리고 오른편 강심 능라도에 들어선 텐트 모양의 둥근 건물 ‘5월1일 경기장’ 등이다.

평양 시내 관광이 시작됐다. 대부분 김 주석의 ‘혁명 사업’(항일 투쟁) 유적지였다. 만경대에 올라 대동강을 본 뒤 근처의 ‘만경대 고향집’에 들렀다. 김 주석의 생가다. 개선문(높이 60m)도 평양 관광에서 빼놓지 않는 건축물. 파리의 개선문과 비슷하다고 하자 북측 안내원은 파리 것보다 10m 더 높다고 설명했다. 문에 쓰인 ‘1925∼1945’는 김 주석이 항일 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가(1925년) 돌아온(1945년) 해라는 설명. 그래서 ‘개선문’이고 이 부근은 ‘개선 혁명 사적지’라고 불린다.

‘만경대 학생 소년 궁전’에도 들렀다. 교실이 690개나 되는 초대형 건물에서는 하루 5000여명의 소년 소녀가 예능 과학 체육 등의 ‘소조 활동’을 펼친다고 한다. 소년 궁전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대형 극장에서 펼쳐지는 예술 소조원의 공연 관람. 점심때는 대동강 변 ‘옥류관’에서 ‘평양 랭면’과 녹두지짐을 맛보았다. 코미디언 남보원이 냉면 여섯 그릇을 한자리에 해치우고 돌아갔다는 말은 이 식당에서 들을 수 있는 전설 같은 얘기다.

평양 묘향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평양 관광의 주요 코스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 사적’. 그러나 남측 관광객이 서로 다른 이념이 빚어내는 갈등에서 벗어나 비교적 마음 편히 즐길 만한 것은 옥류관 냉면과 국제 친선 전람관, 그리고 단군릉이다.

●옥류관

북측이 밝힌 평양 4대 음식은 평양냉면 숭어냉수탕 평양 온반 녹두지짐. 평양냉면하면 역시 대동강 변 옥류관이 으뜸 아닐까. 시내 투어 도중 점심 식사를 위해 들른 옥류관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모두 주민들이다. 현관에 열 폭 병풍이 있거들랑 꼭 한 번 읽어보자. 평양의 음식에 관한 내용이다. 그 중에는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옥류관에 보인 관심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내용도 있다. .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음식 가지 수가 수백 종, 국수만 하루 1만 그릇 이상 내는 옥류관은 육류 소비량이 하루 2t 이상이나 된다. 이런 대 식당에 재료가 떨어진다면 영업을 못하거나 질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이를 우려한 김 주석은 1988년 ‘재료 조달 대책’을 마련해준다. 평양시 상원군을 ‘대외 봉사 원자재 공급기지’로 지정, 옥류관 등 식당에 녹두 메밀 참깨 고추 등 ‘희소 곡물’과 양념이 떨어지지 않게 공급하도록 조치한 것.

잘 닦아 반짝이는 놋그릇에 담아내는 평양냉면 맛은 다른 북한 음식과 마찬가지로 자극적이지 않다. 강한 양념과 맛에 길들여진 남측 관광객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편. 그러나 이런 순한 맛도 2 ,3일간 지내다 보면 곧 익숙해지고 떠날 즈음이면 그 진미를 느끼게 된다.

묘향산 입구에 있는 국제 친선 전람관은 북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받은 선물 21만여점이 전시돼 있다. 묘향산=조성하기자

●국제 친선 전람관

묘향산 입구에 위치한 청기와 지붕의 초대형 콘크리트 건물. 세계에서 보기 드문 ‘선물 박물관’으로 김 주석 부자가 북한을 방문한 174개국 국빈으로부터 받은 선물 21만 여점(2000년 현재)이 총면적 2만2000여 평의 전시실 150개(‘위대한 수령 선물관’ 100, ‘김정일 장군 선물관’ 50개)에 나뉘어 전시돼 있다.

가장 먼저 본 것은 99년 중국 윈난 성의 쿤밍에서 열리 세계 화초 전시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는 꽃 ‘김정일 화’. 일본 시즈오카 현의 방문단이 88년 증정한 것이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처의 크리스털 그릇,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의 악어가죽 서류 가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대형TV세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도자기 접시도 보인다.

전람관 중앙 홀엔 김 주석의 실물 크기 밀랍 상이 서 있다. 백두산을 배경으로 뒷짐 진 채 서서 미소 짓는 모습이다. 관람 후에 오른 6층 전망대에서는 묘향천이 흘러내리는 묘향산의 계곡과 산을 볼 수 있다.

전람관 입장 때는 가방을 맡겨야 한다. 실내 흡연 및 사진 촬영은 불가. 150개나 되는 ‘선물관’은 외관상 구별되지 않고 복도에 안내도가 없어 일행과 헤어질 경우 따라 잡기 어려우니 조심해야 한다.

평양·묘향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평양 및 백두산 관광 사업을 허가받은 ‘㈜평화항공여행사’는 평화자동차의 자회사. 평화 자동차는 북한 남포 시(평양 서방 55km)에서 ‘휘파람’이라는 승용차(이탈리아 피아트사)를 조립 생산하는 남북 합작 투자 법인이다. 국내에서는 수입차 딜러로 포드 링컨을 판매 중.

40여 차례 북한을 다녀온 ㈜평화항공여행사의 이병규 부장은 “금강산과 달리 북한의 시골과 주민 생활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평양 교예단과 예술 소조(클럽)등의 공연, 옥류관 냉면 등 즐길 거리가 보다 많은 일정으로 여행한다”고 말했다.

1차 관광단(9월15일 출발 예정)의 여행 코스는 평양과 묘향산, 정주와 남포시. 평양에서는 주체사상탑과 만경대에 올라 평양 시내와 대동강을 본다. 개선문과 만경대 학생 소년 궁전 및 창광 유치원, 평양 교예단을 방문, 공연을 관람한다. 정주에서는 시골 풍광을 보면서 미꾸라지죽과 호박죽을 맛보고 남포에서는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한다.

백두산 관광은 4차 관광단(5박6일·9월27일 출발 예정)부터 시작될 전망. 1차 관광단의 평양 일정에 백두산(1박)을 추가한 형태다. 백두산까지는 고려항공편으로 이동(삼지연 비행장)한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 유적지라는 ‘백두 밀영’(密營·비밀 아지트)을 보고 백두산 천지에 올라 천리수해 해돋이도 감상할 계획. 평양 옥류관에서는 평양냉면, 묘향산에서는 돌 버섯 등 식도락도 즐긴다. 가격은 △4박5일 230만원 △5박6일 300만원. 현지 추가 비용은 없다. 문의 및 예약 02-6383-4302, 3

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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