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性, 공부합시다" 홍성묵교수 vs 임상수감독

  • 입력 2003년 8월 28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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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치료 전문가인 홍성묵 교수(왼쪽)와 영화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성문화 박물관에서 만났다. 뒷배경은 발기 상태의 남성을 묘사한 고대 암각화.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성치료 전문가인 홍성묵 교수(왼쪽)와 영화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성문화 박물관에서 만났다. 뒷배경은 발기 상태의 남성을 묘사한 고대 암각화.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바람’이 거세게 분다. 온 가족이 바람이 나는 영화 ‘바람난 가족’은 25일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외도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 ‘앞집여자’는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막을 내렸다. 서로에 대해 성적 매력을 잃어가는 부부에게 체념 혹은 ‘바람’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 ‘바람난 가족’에서 일부일처제의 배타적 성관계를 비웃은 임상수 감독 성치료를 통해 부부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홍성묵 교수(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가 만났다.》

홍성묵=‘바람난 가족’은 현재의 한국, 특히 30대 전후 기혼남녀들의 성문화를 잘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면도 있고, 성에 대한 가치관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물음을 던져주기도 하고 말이죠.

임상수=결혼이 서로에 대한 성적 매력을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건 명백한 진실인 것 같아요. 그렇죠?

●"러브호텔도 가고 카 섹스도 해야죠

홍=성상담을 하다보면 영화에서처럼 서로 식상해져 버린 부부가 정말 많아요. 외도도 대부분 거기서 비롯되죠. 이를 극복하려면 부부가 다양한 성행위를 의식적으로 시도해야 합니다. 러브호텔도 가고 카섹스도 해보고. 한국에서는 40대 후반 이후 오럴 섹스를 하는 부부가 5%도 안 되는데, 그것도 문제죠. 서양에서는 부부가 각각 치장하고 바에서 만나서 서로 유혹하는 ‘역할 놀이’를 성기능 장애 치료요법으로 쓰기도 합니다.

임=하지만 그것도 결국 사라진 성적 매력을 되살려보려는 안간힘에 불과하잖아요. 이혼율이 높은 서양에서는 묘비명에 배우자 이름이 세 명씩 적혀있기도 하던데, 특정 배우자와 사는 동안은 일부일처제이지만 길게 보면 한 파트너와 평생을 사는 사람, 특히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홍=그렇죠. 미국의 이혼율이 60%가량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미국 성학자 솔 골든의 조사를 보면 부부의 45%가 결혼 5년 이내에 이혼하고, 35%는 그 후 20년 이내에 이혼한다고 해요. 나머지 20% 중에서도 15%는 이혼하고 싶어도 타이밍을 놓친 경우이고 그런대로 사랑을 유지하고 평생 살았다는 부부는 5%에 불과하답니다. 한국도 그와 닮아가는 추세죠.

임=좀 다른 이야기인데, 2년 전에 독일 기혼여성 23명의 외도 수기라 할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가 출간됐어요. 그들 중 이혼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바람을 피운 이유는 단 하나, 사라진 활력과 섹시함을 회복하고 싶은 거죠. 객관적으로 얼마나 나쁜 여자들이에요. 그래도 자신의 내적 욕구 실현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인간’적이어서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홍=일종의 ‘열린 결혼 (Open Marriage)’인데, ‘바람난 가족’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이더군요. 상대의 외도를 묵인하는 ‘열린 결혼’이 가능하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 외도에 수반되는 죄의식은 성기능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외도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다시 겪고 자신감을 회복한 듯한 느낌도 갖지만, 늦든 빠르든 그런 감정도 결국 사라지게 돼 있어요. 오래된 결혼처럼 말이죠. 그런 면을 자각한다면, ‘어차피 비슷해질 다른 것’을 뒤쫓기보다 현재의 성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죠.

●"결혼생활 잘꾸리는 연구가 중요"

임=‘바람난 가족’에서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결혼을 잘 꾸려가는 게 굉장히 어렵다, 정 필요하면 바람도 피우는 건데 필요한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그것도 쉽지 않다는 거죠. 결혼과 사랑을 부정적으로 본 건 절대로 아닙니다. 중요한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잘 하려고 성실하게 연구해야 된다는 거죠.

홍=부부가 나름대로의 성 테크닉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적 흥분의 고조 과정에 대한 최근 학설은 그 과정이 층계식이 아니라 서클이라는 것입니다. 서클에는 삽입 섹스뿐 아니라 애무, 오럴 섹스, 자위 등 여러 정거장이 있는데, 어느 정거장이든 둘만 좋으면 거기 머물러도 상관없다는 거죠. ‘바람난 가족’에서 남편은 사정했는데 아내는 만족이 안돼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관객들이 이상하게 볼지 몰라도 성치료에서는 오히려 그걸 권장합니다. 여성들이 자위를 통해 오르가슴을 훈련하는 ‘셀프-스티뮬레이션(Self-Stimulation) 테크닉’을 익혀서 실제로 오르가슴을 느껴보려고 노력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관계에 ‘펑크’가 납니다. 바이브레이터 같은 자위기구를 예쁜 장난감처럼 만들어서 가정주부들이 다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돼요.

임=70년대에 주부들 사이에 ‘타파웨어 파티’가 인기였잖아요. 요즘 북미지역에선 ‘퍼커웨어 파티 (Fuck-a-Ware Party)’가 인기래요. 주부들이 한집에 모여 섹스 도구를 골라보고 구입하는 건데요. 역시 결혼이 성적 매력을 잃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혼을 유지하려면 그런 노력이 필요한 거죠. 한국에선 지금까지 그런 노력 없이도 결혼이 유지되어 왔지만 이젠 달라졌다고 봐요.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국 남자들의 문제예요. 한국 남자들이 성을 배워가는 과정에 얼마나 문제가 많아요. 사실 한국 남자들은 섹스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합니다.

홍=무서워할 뿐만 아니라 불쌍한 정도예요. 97년 한국 남성들을 대상으로 ‘임포의 전화’를 개설했는데 두 달 열흘 동안 6400통의 전화가 왔어요. 20∼45세 남성의 75%가 발기부전 등의 성기능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고 성취욕이 너무 강한 사회 환경이 그런 문제를 야기하는 거죠. 그러니 젊을 때 성에 집착해도 어느 수준에 가면 부부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하잖아요.

●"문제없다는 섹스리스 부부가 문제"

임=성관계를 갖지 않는 ‘섹스리스(Sexless)’ 부부이면서도 문제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스스로 의식을 왜곡하고 다른 사유를 들어 합리화하는 경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홍=그럼요. 병리적 이유로 부부의 성호르몬 수치가 똑같이 바닥인 경우가 아닌 한 섹스리스 부부는 100%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임=한국 남자들은 아름다운 첫경험을 하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죄의식이 수반되거나, 강제로 하거나, 아니면 매춘을 하거나. 그렇게 왜곡된 방식으로 성을 익히면, 성은 정복을 위한 공격, 아니면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죠.

홍=삽입을 하지 않으면 섹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한국에서 특히 심해요. 또 남자들이 섹스의 지속시간에 집착하는데 두 시간을 해도 상대가 쾌감을 느끼지 못하면 그건 엉터리죠. 서양에서는 둘이 함께 느낄 수만 있다면 포옹도 삽입 섹스와 비슷한 효과를 갖는 성행위라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도입되고 있는데 우리는 구닥다리 보수적 개념이 아직도 지배적이니 문제죠.

임=‘바람난 가족’을 두고 입 가진 사람들은 죄다 “너무 ‘쿨’하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들 해요. 남편이 애인에게 전화하는 것을 들은 아내가 “그렇게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게 가능하냐는 거죠. 근데 그게 그렇게 불가능한 이야기인가요? 되레 부부는 모든 관심사와 생각, 심지어 환상까지 공유해야 한다는 ‘일심동체’의 관념이 더 불가능하고 비인간적인 요구죠. 사실 인생이 어떻게 ‘쿨’하겠습니까. 지지고 볶고 울고불고 하는 거지. 하지만 ‘바람난 가족’을 보고 “너무 ‘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좀 ‘쿨’한 생활방식을 도입해보려고 애를 써야 할 것 같아요.

홍=외도야 어차피 사라지지 않겠지만, 부부 사이에서는 익숙해지는 데 따른 성적 매력의 상실, 성적 불만족을 탓하기보다 함께 시간을 투자해 성 테크닉을 실험해보고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섹스를 거저 잘하기는 어려워요. 본능에 따른 행위를 뛰어넘어 배우고 익혀나가야 할 사랑의 기술이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성에 대한 가치관만 뚜렷하다면 어떤 성행위를 하든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임=옳은 말씀이지만, 불행하게도 한국 남자들은 출세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마누라랑 그런 거 연구할 시간이 없어요 (웃음). 그런 점에서는 저는 오히려 여자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대담자 소개▼

▽홍성묵은?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심리학 교수. 성기능 장애자 치료를 위한 ‘Macarthur Centre for Sexual Health’를 대학 부설기관으로 창립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 정부 공인 성치료사이며 아시아 성학 연합회 실행 이사를 맡고 있다. 한글로 출간된 저서로는 ‘아름다운 사랑과 성’ ‘사랑은 진할수록 아름답다’가 있다.

▽임상수는?

연세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시나리오작가로 일하다 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감독에 데뷔했다. 2000년 ‘눈물’을 집필, 연출했고 올해 문소리, 황정민 주연의 ‘바람난 가족’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바람난 가족’은 27일 개막된 올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 본선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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