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어디 정보없소?" 수사관들, 조폭등을 정보원으로 활용

  • 입력 2003년 8월 28일 16시 40분


코멘트
수사관과 수사대상간의 ‘부적절한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 ‘필요악’인가. 사진은 늦은 밤까지 사건 수사로 여념이 없는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전경. 도로 위의 ‘우선멈춤’ 표시가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수사관과 수사대상간의 ‘부적절한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 ‘필요악’인가. 사진은 늦은 밤까지 사건 수사로 여념이 없는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전경. 도로 위의 ‘우선멈춤’ 표시가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현직 검사가 자신이 기소중지 시킨 인물을 수사에 활용한 사건을 계기로 수사관과 수사대상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수사관이 위험 요소가 많은 인물들을 수사에 활용하며 정보원으로 쓰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인가 하는 것. 수사관들이 활용하는 인물들은 전과자,유흥업소 사장, 지역 유지 등에서 조직폭력배, 룸살롱 마담까지 실로 다양하다.》

●'비리 수사관' 덫

문제는 이들을 실제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친분을 쌓아야하고 이 과정에서 금품 및 접대는 물론 사건 편의를 봐주는 등 이해관계가 얽히기 쉽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런 부적절한 관계는 사건 해결, 정보 취득 등에 유용하게 쓰일 경우도 있지만 ‘부메랑’이 되서 검사나 경찰관을 ‘비리 수사관’으로 전락시키는 덫이 되기도 한다.

서울에서 부동산 분양업과 음식점을 경영하는 정모씨(51)는 고향 후배인 모 검사를 “영감” 또는 “아우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모신다.

고향의 향토음식이 나오는 철마다 직접 음식을 공수해다가 저녁 대접을 할 정도. 물론 평소 후배 검사의 회식자리에도 참여해 술값, 밥값을 내주기도 한다.

그가 지방으로 전근을 간 후에도 이런 관계는 지속됐고 정기적으로 후배 검사의 근무지로 찾아가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

정씨는 과거 조직폭력배 출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지만 강남 일대의 룸살롱 동정, 조폭이 낀 분양사기, 브로커들의 인맥 등을 꿰뚫고 있어 ‘마당발’로 불린다. 후배 검사로서는 정씨로부터 이런 정보를 얻기란 어렵지 않다.

정씨도 후배 검사를 적절히 활용한다. 사업상 중요한 인물을 만날 때 후배 검사를 동석시키는 것. 이들은 식사나 술자리에서 일절 사업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후배 검사의 후광으로 정씨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내 모 경찰관의 경우 얼마 전 사건 용의자의 은신처를 급습할 때 친하게 지내던 ‘왕년의 조폭’들을 동원했다. 워낙 친하게 형님, 동생 하던 사이라 함께 저녁을 먹다가 무심결에 “오늘밤에 누구 잡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던 것.

당시 범인들이 이미 은신처를 빠져나간 후라 별 탈이 없었지만 만약 놓쳤다거나 ‘조폭’ 동생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당장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었다.

이런 부적절한 관계에도 나름대로의 ‘룰’은 있다.

‘괜찮은’ 동생들은 절대로 직접 자신의 일을 형님에게 부탁하지 않고 해결이 불가능한 일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잘 아는 동생이 이런 저런 일로 그곳(검찰 또는 경찰)에 갔는데 담당이 누구이니 말이나 잘해 달라”고 말하고 부탁하는 사안도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주면 도움이 되는 정도로 그친다.

자신의 일은 다른 수사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대한민국 검·경, 조폭, 사업가들이 워낙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여 있다보니 자기 민원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쯤 더 있기 마련이다.

큰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검찰과 경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평소에 이 같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가 워낙 끈끈하게 형성돼있기 때문.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조직문화가 닮아가기도 한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수사기관 종사자들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범죄를 해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범죄자들의 생리를 모르고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

수사관도 사람인 이상 사건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라도 알게 모르게 정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미 죗값을 치른 후라면 굳이 피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문제가 되면 ‘부적절한 관계’로 볼 수 있지만 친분을 쌓고 정보를 얻을 때야 뒤에 문제가 발생할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너무 색안경을 쓰고 본다면 제대로 수사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영화-소설속 잘못 알려진것들▼

영화 '와일드 카드'

현직 검사가 증거 확보를 위해 몰래카메라를 찍은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수사기관이나 범죄자에 대한 뒷얘기 중에는 과장된 것이 많다.

대부분 영화나 소설의 이야기 전개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과장된 모습이 일반인들의 오해를 부르는 것도 사실. 실제와 다른 뒷얘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조폭 이름은 누가 붙이나=‘○○파’ ‘△△파’ 등의 이름 중 상당수는 경찰이 붙이는 경우가 많다. 정식 조직폭력으로 분류하려면 우두머리와 조직도, 행동강령, 자금책 등이 필요조건. 그러나 조직폭력으로 검거된 상당수 폭력배의 경우 이런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곳은 드물다. 두목의 이름이나 활동 지역을 기준으로 경찰에서 붙여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넘버 3'

▽조폭은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는다(?)=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조폭은 상납보다는 업소에 생수, 음료수, 안주 등을 독점 공급하며 이권을 챙긴다. 얼마나 많은 업소에 납품을 하느냐가 결국 관할 구역의 크기가 되는 셈이다.

▽경찰학교 졸업하면 형사가 된다(?)=영화 투캅스에서 강형사(박중훈 분)가 경찰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형사로 부임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설정.

경찰관이 되는 과정은 크게 순경 공채를 통해 경찰종합학교를 졸업하거나 경찰대학, 간부 후보생이 되는 길뿐. 이 중 경찰대학과 간부 후보생은 졸업과 동시에 경위(경찰서 반장)가 되기 때문에 일선 형사로 부임하지는 않는다.

경찰학교를 졸업하면 순경 계급을 달게 되며 시보 기간이 있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형사계로 배치되는 일은 없다.

▽조폭은 패싸움만 하고 다닌다(?)=전혀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거리에서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경우는 드물다. 물의를 일으키는 순간 경찰에 검거되고 조직이 일망타진되기 때문.

개개인의 싸움은 있을 수 있지만 영화에서 보듯 세력 확장을 위해 단체로 난투극을 벌이는 설정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진짜 조폭 출신들은 거리에서 활극을 벌이는 조폭들을 ‘양아치’라고 부른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