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시민강좌' 특집기획 "진보주의는 '역사'를 책임안진다"

  • 입력 2003년 8월 2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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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린 교수는 2030세대가 월드컵, 반미 촛불시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지만 자칫 사회전반의 하향 평준화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전광판을 통해 개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노사모 회원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나성린 교수는 2030세대가 월드컵, 반미 촛불시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지만 자칫 사회전반의 하향 평준화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전광판을 통해 개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노사모 회원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진보를 자처하는 현재 한국 사회의 주류집단에 희망이 있는가.

최근 발행된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는 특집기획 ‘한국사에서의 보수 진보 읽기’를 통해 지난해 대선 승리 이후 주류가 된 진보세력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진보를 자처하는 쪽에서 발휘하는 일방성과 그 열기가 초래할지도 모를 역사의 오도가 염려스럽다’는 것이 편집진이 밝힌 기획 의도. ‘한국사 시민강좌’의 책임편집인은 원로 역사학자 이기백씨.

‘2030세대의 평등주의적 진보관 문제 없나’를 기고한 나성린 한양대 교수(50·경제학)는 진보주의가 구호만 요란할 뿐 그 지향점과 국가적 비전이 불확실하고 실천수단이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결과는 하향평준화이거나 불평등의 심화라는 것.

2030세대의 진보성을 ‘계층간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평등주의’에서 찾는 나 교수는 이 세대에 묻는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달성된 후의 결과를 과연 원하는가. 그런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어려움을 견디어낼 인내심이 있는가.

나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사회의 생산 활동에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성향은 가장 높은 집단이며 개인적이고 책임감이 결여된 세대이다. 남이 땀 흘려 축적해 놓은 부를 쓰는 데만 익숙한 세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데 익숙한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이들이 주장하는 평등에 대해 “평등은 경쟁을 전제로 한 사후적 평등이어야지 애초부터 경쟁을 하지 않는 사전적 평등이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회는 역동성과 발전이 없는 죽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재봉 연세대 교수(45·정치학)는 논문 ‘민중운동의 비혁신성-쇄국주의와 국수주의 문제’를 통해 1980년대 진보세력의 이념이었던 민중주의를 재조명했다. 결론은 민중주의가 이론적으로는 진보사관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에서는 폐쇄적이고 수구적인 이념이었다는 것. 민중주의가 민속이나 토속문화 외에는 모두 외래사상으로 규정하면서 배척했기 때문이다.

함 교수는 한민족의 역사를 ‘개국(開國)의 역사’라는 기준으로 재평가했다. 삼국시대에는 중국과 인도의 불교를,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유교를 보편문명으로 받아들이면서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조선 말 새로운 보편문명으로 다가온 근대문명을 배척한 쇄국정책은 망국으로 이어졌다는 것. 민중주의의 오류는 이러한 한국의 처지와 역사를 망각한 채 지극히 배타적이고 정체적 개념인 ‘민중’을 설정한 후 이를 지키기 위한 국수주의와 쇄국주의를 채택한 점이라고 함 교수는 주장했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64·경제학)는 ‘진보주의란 무엇인가-그 뿌리를 찾아서’란 글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가 진보주의 운동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는 실상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경제사적으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진보’시킨 공로자들이 오히려 모두 매도되는 상황은 그 자체가 역사왜곡이라고 공박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한국사 시민강좌'란? ▼

광복 후 한국사학계의 1세대인 이기백씨(전 한림대 교수)를 주축으로 1987년에 창간된 반년간지. 창간 이후 최근호인 제33집까지 호마다 한국사와 한국사회현실 사이의 쟁점을 잇는 다양한 주제들을 특집으로 다뤄 독자들의 호평을 받아왔다. 현재 책임편집인인 이씨 외에 류영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 민현구 고려대, 이기동 동국대,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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