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性고문 보도의 기억

  • 입력 2003년 8월 5일 18시 46분


코멘트
유시민 의원(개혁국민정당)이 쓴 책 ‘노무현은 왜 J일보와 싸우는가’를 읽어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불신과 피해 의식이 뿌리 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참여정부 2차 국정토론회도 언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평소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낸 자리였다.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언론을 질타한 것이 한두 차례가 아니지만 이번은 어느 때보다도 톤이 강했다.

언론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대목도 있었다. 특히 전직 경찰관 문귀동씨의 성고문 사건(1986년) 관련 발언은 시대적 상황이나 언론인의 고뇌를 생략하고 표피적인 사실만을 말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 대통령은 “문귀동 형사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마음속에 싹텄다”고 말했다.

언론인들도 그 사건 보도를 부끄러움과 함께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치하의 얼어붙었던 시절에는 민감한 정치기사, 시국 관련 사건기사, 심지어 대통령의 행사기사까지 제목, 크기, 내용에 관한 규제를 담은 ‘보도지침’이 내려왔다. 위반하는 언론사에는 공공연한 위협이 자행됐고 위반 정도가 심하면 언론인을 영장도 없이 ‘남산’ 지하실로 끌고 가 두들겨 패기도 했다.

검찰의 성고문사건 수사발표 때는 7가지 보도지침이 내려왔다. ‘사회면에 취급할 것’ ‘검찰 발표 전문(全文) 꼭 실어줄 것’ ‘성추행이라고 하지 말고 성모욕 행위로 할 것’ ‘발표 외 신문사 독자적 취재보도 불가’ ‘반체제측 고소장이나 성명 일절 보도불가’….

보도지침과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다. 불의한 권력에 끝까지 항거하지 못한 점을 비판한다면 달게 받아들이겠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모를 386 이후 세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와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필자는 본보 자매지인 ‘신동아’의 원고청탁을 받고 성고문 진상에 관한 심층취재 기사를 썼다. 성고문이 있었다는 쪽에 무게를 둔 글이었다. 그런데 ‘신동아’가 인쇄에 들어가는 날 당시 안전기획부 직원 30여명이 공장을 점거하고 인쇄를 못하게 방해했다.

결국 원고의 절반 이상이 잘린 기사가 ‘신동아’(1986년 9월호)에 실렸다. 필자는 검찰 발표를 인용한 뒤 취재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반박했는데 가위질을 당해 발표만 남고 반박은 사라졌다. 기사가 나간 뒤 여러 곳에서 항의를 받으며 필자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안기부가 잘라내기 전의 대장을 필자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5공의 언론에는 이처럼 굴곡이 있었다. 그러나 6월 항쟁의 불을 지펴 전두환 정권을 굴복시키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고 본다.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집요한 추적보도가 대표적 사례다.

언론이 가장 오욕스러웠던 때를 기준으로 오늘의 언론을 매도하는 것이 과연 노 대통령의 말대로 ‘공정하고 냉정한 논리’를 갖춘 비판인가. 노 대통령에게 부탁이 있다면 언론 비판을 하더라도 부당한 공격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비주류 정치인’ 시절에 겪은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고언(苦言)을 드린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